황재균 은퇴식까지 따라가 보니, 2201번째 인사가 더 묵직했다

얼마 전 황재균 은퇴식 소식을 다시 찾아보다가, 단순히 한 선수의 마지막 행사로 넘기기엔 장면마다 기록의 밀도가 꽤 높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야구는 숫자로 남지만, 이상하게 은퇴식 같은 날은 그 숫자가 사람의 얼굴을 하고 다가오죠.
황재균 은퇴식은 2026년 9월 13일 수원 KT위즈파크에서 열린 롯데 자이언츠전과 함께 진행됐습니다. 원래는 8월 8일 같은 장소, 같은 상대인 롯데전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폭염으로 경기가 취소되면서 한 차례 미뤄졌습니다. 그래서 이 은퇴식은 날짜부터 조금 특별했습니다. 기다림이 생겼고, 그 기다림 때문에 팬들의 감정도 더 눌려 있다가 터진 느낌이었습니다.
미뤄진 은퇴식이 만든 묘한 긴장감
은퇴식이 연기됐다는 건 보통 행사 일정의 문제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야구에서는 조금 다릅니다. 선수의 마지막 인사가 특정 경기, 특정 상대, 특정 구장과 엮여 있기 때문입니다. 황재균에게 롯데전은 그냥 일정표의 한 칸이 아니었습니다. 프로 커리어의 큰 구간을 함께한 팀이기도 하고, KT에서 우승 캡틴으로 남은 시간과 대비되는 이름이기도 했으니까요.
KT는 은퇴선수 특별엔트리를 활용해 황재균을 등록했습니다. 은퇴식만 하고 떠나는 방식이 아니라, 실제 경기 안으로 다시 들어오게 만든 겁니다. 이 장치가 꽤 컸습니다. 팬 입장에서는 전광판 영상과 꽃다발도 좋지만, 유니폼을 입은 선수가 타석에 서고 수비 위치로 걸어가는 장면을 보는 순간 감정의 온도가 달라집니다.
기록으로 보면 더 선명한 선수
황재균의 KBO 통산 성적은 2200경기, 타율 0.285, 2266안타, 227홈런, 1121타점, 1172득점, 235도루로 남아 있습니다. 은퇴식 당일 대타 출전까지 더하면 팬들이 기억하는 숫자는 2201번째 경기라는 상징으로 이어졌습니다. 2000안타를 넘긴 내야수, 1000타점과 1000득점을 동시에 넘긴 타자, 여기에 200도루까지 갖춘 선수라는 점에서 그의 커리어는 단순한 장타형 3루수로만 묶기 어렵습니다.
사실 황재균의 매력은 아주 압도적인 한 시즌보다 긴 기간 쌓아 올린 누적에 있습니다. 화려한 MVP 시즌 하나로 기억되는 타입이라기보다, 여러 팀과 리그의 변화를 지나오며 계속 경기에 나간 선수였습니다. 현대 유니콘스에서 출발해 넥센, 롯데, KT를 거쳤고, 미국 무대에도 도전했습니다. 메이저리그 성적 자체는 18경기 타율 0.154, 1홈런으로 짧았지만, 한국 내야수가 그 문을 두드렸다는 사실은 커리어 서사에서 빠지기 어렵습니다.
- 통산 2200경기 이상 출전한 꾸준함
- 2266안타와 227홈런을 함께 남긴 공격 생산력
- 1000득점, 1000타점, 200도루를 넘긴 균형감
- KT 창단 첫 통합 우승 당시 주장이라는 상징성
은퇴식 당일, 경기도 이야기를 보탰다
흥미로운 건 황재균 은퇴식이 감성만 남긴 날이 아니었다는 점입니다. KT는 이날 롯데를 5대2로 이겼고, 6연승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은퇴식이 열리는 날 팀이 이기는 장면은 흔한 듯해도 쉽지 않습니다. 선수 개인의 퇴장과 팀의 현재 경쟁력이 같은 프레임에 잡히면, 팬들은 과거와 현재를 동시에 보게 됩니다.
황재균은 6회말 1사 상황에서 대타로 등장했습니다. 스코어가 5대2로 벌어진 뒤였고, 경기 운영상으로도 팬 서비스와 승부의 균형을 맞출 수 있는 타이밍이었습니다. 이후 3루 수비까지 소화하며 자신이 가장 오래 기억될 자리에서 마지막 장면을 만들었습니다. 은퇴식의 가장 좋은 방식은 결국 그 선수다운 모습으로 끝나는 것인데, 황재균에게는 타석과 3루가 그 답이었습니다.
왜 하필 롯데전이었을까
롯데는 황재균의 커리어에서 팬덤의 열기와 선수의 성장이 가장 선명하게 겹친 팀입니다. 부산에서 뛰던 시절 그는 강한 어깨, 빠른 발, 장타력, 그리고 큰 경기에서의 존재감으로 이름을 키웠습니다. 이후 KT에서 베테랑이 되고, 2021년 창단 첫 통합 우승의 주장으로 남았죠. 그래서 롯데와 KT가 한 경기장에 서 있는 은퇴식은 묘하게 균형이 맞았습니다. 과거의 자신과 마지막 유니폼의 자신이 같은 날 마주 보는 구도였으니까요.
황재균이라는 이름이 남긴 감정
황재균을 떠올릴 때 저는 늘 ‘기록이 꽤 두껍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타율 0.285는 꾸준한 주전 타자의 숫자이고, 2266안타는 오래 버틴 선수만 닿을 수 있는 영역입니다. 227홈런은 3루수로서 장타 가치를 말해주고, 235도루는 젊은 시절의 운동능력을 보여줍니다. 여기에 1000득점과 1000타점이 같이 붙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출루해 홈을 밟은 날도 많았고, 주자를 불러들인 날도 많았다는 뜻입니다.
근데 숫자만으로는 설명이 조금 모자랍니다. 황재균은 팀을 여러 번 옮겼고, 기대와 비판을 함께 받았고, 해외 도전 뒤 다시 KBO에서 자기 자리를 만들었습니다. KT에서는 단순한 베테랑 내야수가 아니라 팀의 첫 우승을 함께 든 주장으로 기억됩니다. 팬들이 은퇴식에서 눈물을 보인 이유도 그 지점에 있었을 겁니다. 성적표보다 더 오래 남는 건 결국 어떤 시기에 어떤 표정으로 팀의 중심에 서 있었느냐니까요.
황재균 은퇴식은 ‘잘한 선수 한 명이 떠났다’보다 조금 넓게 읽힙니다. KBO에서 20년 가까이 버틴 야수가 어떤 방식으로 작별할 수 있는지 보여준 날이었고, 누적 기록의 힘이 얼마나 늦게 감정을 흔드는지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2201번째 인사라는 말이 오래 남습니다. 야구에서 한 경기 더 뛰는 일이 누군가에겐 단순한 숫자지만, 어떤 선수에겐 커리어 전체를 닫는 문장이 될 수 있으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