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준용 합류 한국 남자 농구 메달 도전이 금빛으로 끝났다

8월 한일 평가전에서 한국이 이틀 연속 크게 졌다는 소식을 보고, 아시안게임 메달까지 가는 길이 꽤 험하겠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 달 뒤 같은 일본을 결승에서 꺾었다. 최준용의 늦은 합류는 그 반전 속에서 눈여겨볼 장면이었다.
29점 차 패배에서 결승 승리까지
한국 남자 농구 대표팀은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을 앞두고 일본과의 8월 평가전에서 68-88, 66-95로 졌다. 두 번째 경기는 29점 차였다. 당시 이현중과 최준용 등 주축 선수가 빠졌다는 사정은 있었지만, 일본의 속도와 공격을 어떻게 막을지 걱정이 남을 만한 결과였다.
대회가 시작되자 흐름은 달라졌다. 한국은 조별리그에서 3연승을 거뒀고, 일본과의 조별리그 맞대결도 100-83으로 이겼다. 대한민국농구협회 기록을 따라가면 요르단과의 8강은 114-80, 이란과의 4강은 77-51, 일본과의 결승은 67-57이었다. 6경기를 모두 이겼지만 점수의 모양은 같지 않았다. 요르단전에서는 공격이 터졌고, 결승에서는 일본을 57점에 묶었다. 큰 점수를 내는 경기와 낮은 점수에서 버티는 경기를 모두 통과한 셈이다.
이 반전은 최준용 한 명의 합류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조별리그 3승은 그가 코트에 서기 전에 만들었다. 다만 토너먼트에 들어서며 쓸 수 있는 카드가 하나 더 늘었고, 상대와 경기 상황에 맞춰 선수 조합을 바꿀 여지도 커졌다.
최준용은 왜 8강부터 뛰었나
최준용은 처음부터 최종 명단에 있었다. 200㎝ 포워드인 그는 미국 무대 도전 일정을 소화하느라 조별리그에는 출전하지 않았고, 9월 15일 대표팀에 합류했다. 요르단전부터는 12명이 모두 모인 상태로 토너먼트를 치렀다. 늦게 합류한 선수를 곧바로 실전에 투입해야 했으니, 기대와 함께 호흡이라는 변수도 있었다.
요르단전의 결과만 보면 모든 게 매끄러웠던 듯하지만, 그 경기에서 최준용은 후반에 테크니컬 파울을 받고 퇴장했다. 팀은 34점 차로 이겼어도 개인에게는 다음 경기를 앞두고 되짚을 장면이 남았다. 이어진 이란전에서 한국은 26점 차 승리를 거뒀고, 최준용도 결승까지 함께했다. 그의 합류를 평가할 때 요르단전의 퇴장과 이후의 승리를 같이 봐야 이야기가 더 정확해진다.
대표팀의 포워드 구성을 보면 최준용이 줄 수 있는 선택지도 보인다. 대한민국농구협회 명단상 이현중은 202㎝, 여준석은 203㎝, 최준용은 200㎝다. 키가 비슷해도 세 선수의 역할이 완전히 같지는 않다. 상대가 누구를 막는 데 수비를 모으는지에 따라, 공을 운반하고 공격을 이어가는 선수와 슛을 마무리하는 선수의 배치를 달리할 수 있다. 최준용의 가세가 그런 선택의 폭을 넓혔다는 해석은 가능하다. 반면 합류 전후의 점수 차만으로 그의 기여를 따로 계산하기는 어렵다.
결승 67점보다 눈에 남는 일본의 57점
결승은 조별리그 한일전과 전혀 다른 점수로 끝났다. 한국은 100점에서 67점으로, 일본은 83점에서 57점으로 내려왔다. 두 경기의 점수 차이는 각각 17점과 10점. 조별리그처럼 득점 경쟁으로 달아나지는 못했지만, 한국은 낮아진 득점 속에서도 리드를 지켰다. 결승에서 필요한 방식으로 이긴 것이다.
그날 기록의 중심에는 이현중이 있다. 그는 27점 18리바운드를 올렸고, 이정현도 14점을 보탰다. 이현중의 리바운드 18개는 결승을 공격력만으로 읽기 어렵게 만든다. 슛이 빗나간 뒤 공을 다시 확보하는 싸움에서 그만큼 큰 몫을 했기 때문이다. 최준용 합류를 이야기하면서도 결승의 주인공과 팀 전체의 수비를 빼놓을 수 없는 이유다.
8월에는 일본에 두 번 크게 졌고, 9월에는 조별리그와 결승에서 두 번 이겼다. 이 네 경기를 한 줄로 이어 놓으면 단순한 설욕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출전 선수가 달랐고, 대회가 진행되며 맞춰 갈 시간도 생겼다. 평가전 결과를 가볍게 넘길 필요도, 결승 승리를 최준용 혼자 만든 변화로 돌릴 필요도 없다. 어떤 조건에서 나온 숫자인지 봐야 경기의 흐름이 읽힌다.
금메달 뒤에도 남는 기록
이번 금메달은 2014년 인천 대회 이후 12년 만이다. 직전 항저우 대회에서는 8강에서 탈락해 최종 7위에 그쳤다. 그러니 이번 6전 전승은 메달 하나를 더한 기록이면서, 대표팀이 다시 시상대에 올라가는 과정을 보여준 기록이기도 하다.
최준용은 항저우 대회 대표팀 명단에 들지 못했고, 이번에는 조별리그가 끝난 뒤 합류해 금메달을 함께했다. 개인에게도 간격이 큰 두 대회다. 나는 이 이야기를 떠올리면 결승의 67-57만큼 요르단전 퇴장 장면도 생각난다. 선수 한 명의 합류가 곧바로 완성된 경기력을 뜻하지는 않았다. 그 변수를 안고도 팀이 다음 경기를 이겨 나갔다는 점이 이번 메달의 흐름을 더 생생하게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