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7 KBO 드래프트 핵심 변수는 지명 뒤에 보였다

드래프트 중계를 볼 때마다 1순위가 불린 뒤에도 화면을 끄지 못한다. 예상 밖의 이름이 나오거나 유력 후보가 한 라운드 더 기다리는 순간, 각 구단이 어떤 위험을 감수하려는지 조금씩 드러나기 때문이다. 2026년 9월 21일 열린 2027 KBO 신인 드래프트도 그랬다. 하현승의 전체 1순위 지명은 예상에 가까웠지만, 이후의 선택은 선수의 재능만큼 지명 가능한 선수의 범위와 구단 사정이 중요하다는 걸 보여줬다.
유망주 명단부터 달라졌다
KBO가 발표한 지명 대상자는 1,280명이었다. 고교 졸업 예정자 891명, 대학 졸업 예정자 326명, 얼리 드래프트 신청자 43명, 해외 아마추어·프로 출신 등 기타 선수 20명으로 구성됐다. 10개 구단은 11라운드에 걸쳐 110명을 지명했다. 대상자 중 지명된 비율은 약 8.6%다. 이름이 많이 알려진 선수라도 프로 입단권을 얻기까지는 경쟁이 치열하다.
그런데 드래프트의 판도는 이 1,280명에 누가 들어왔는지에서 이미 한 번 바뀌었다. 상위 지명 후보로 거론됐던 덕수고 엄준상과 광주제일고 박찬민이 미국 구단과 계약하면서 국내 구단의 선택지에서 빠졌기 때문이다. 예상 지명 순서를 떠올리던 팬이라면 이 대목부터 다시 계산해야 했다. 유망주 한두 명의 진로 결정이 뒤에 남은 팀들의 후보군까지 바꿀 수 있다.
반대로 부산고 하현승은 미국 구단의 제안을 뒤로하고 국내 무대를 택했고, 키움은 그를 전체 1순위로 지명했다. 같은 해외 진출 가능성이라도 실제 계약과 국내 잔류는 드래프트에 전혀 다른 결과를 남겼다. 선수 평가표를 읽을 때 구위나 타격 재능 옆에 진로가 확정됐는지도 적어둬야 하는 이유다.
1라운드의 숫자에는 서로 다른 계산이 있다
1라운드 10명 가운데 투수는 7명, 야수는 3명이었다. 키움의 하현승에 이어 롯데 박근서, KT 이승원, 삼성 김민훈, SSG 이윤성, 한화 민주홍, LG 윤예성이 투수로 이름을 올렸다. 두산은 내야수 김지우, KIA는 내야수 이호민, NC는 외야수 박보승을 선택했다. 투수 지명이 많았지만, 앞 순번의 두산과 KIA가 잇달아 야수를 고른 흐름도 눈에 띄었다.
여기서 단순히 어느 포지션이 더 귀했는지만 따지면 이야기가 좁아진다. 같은 1라운드 선수라도 즉시 활용할 수 있는지, 시간을 들여 키워야 하는지에 따라 구단의 계산은 달라진다. 김지우처럼 투타 양쪽에서 재능을 보인 선수를 내야수로 지명한 선택은 앞으로 어느 쪽 강점을 키울지까지 지켜보게 만든다. 하현승 역시 고교 시절의 투타 재능과 별개로 프로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어떻게 성장할지가 남아 있다. 지명 당시의 포지션은 출발점이다.
경남고에서 이호민과 박보승이 나란히 1라운드 지명을 받은 점도 흥미롭다. 같은 팀에서 뛰며 비슷한 상대를 만났어도 구단은 서로 다른 수비 위치와 성장 경로를 보고 선택했다. 선수 기록을 비교할 때 타율이나 구속 하나만 떼어 보기 어려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출전 위치, 상대 수준, 시즌 내 기복을 함께 봐야 숫자가 조금 더 선명해진다.
최지만과 지명권 이동이 만든 다른 종류의 변수
2라운드 전체 15순위에서 KT가 부른 이름은 최지만이었다. 메이저리그 통산 525경기에서 67홈런을 기록한 선수다. 고교 유망주를 오래 키우는 일반적인 신인 지명과는 기대하는 시간이 다르다. 풍부한 경험이 곧바로 KBO 타석에서 통할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KT가 그 가능성에 2라운드 지명권을 썼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팬 입장에서는 2027시즌에 얼마나 출전하고 어떤 역할을 맡을지가 가장 현실적인 관전 지점이다.
3라운드에서는 선수 못지않게 지명권 자체가 눈길을 끌었다. KBO의 드래프트 안내에 따르면 NC는 삼성으로부터 3라운드 지명권 한 장을 넘겨받았다. NC는 자기 순번에서 강릉고 투수 임준원을 고른 뒤, 추가 순번에서 덕수고 외야수 황성현을 지명했다. 최종 지명 인원은 NC 12명, 삼성 10명, 나머지 8개 구단이 각각 11명이었다.
지명권 한 장의 이동은 장부상 숫자로 끝나지 않는다. NC는 같은 라운드에서 투수와 외야수를 연달아 확보할 수 있었고, 삼성은 그 순번에서 선수를 선택할 기회가 없었다. 이 거래의 평가는 선수들이 프로에서 성장한 뒤에야 가능하다. 당장 드래프트 결과를 읽을 때는 지명 순서만큼 그 순서가 왜 해당 구단에 왔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다.
지명 순위의 다음 장은 출전 기록이다
드래프트 당일에는 전체 몇 순위라는 숫자가 가장 크게 보인다. 하지만 2027시즌이 시작되면 질문도 바뀔 것이다. 투수라면 몇 이닝을 던졌는지와 함께 선발·불펜 중 어디서 기회를 얻었는지, 타자라면 타석 수와 수비 위치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보고 싶다. 초반 성적이 좋거나 나쁘더라도 표본이 작은 신인의 기록은 출전 기회와 함께 읽어야 한다.
그래서 나는 이번 드래프트에서 가장 오래 남을 변수가 지명 순위 그 자체는 아니라고 본다. 해외 진출로 비었던 자리, 경험 많은 최지만에게 쓴 선택권, NC로 옮겨간 3라운드 지명권이 각각 어떤 성장 이야기로 이어질지가 궁금하다. 110명의 이름이 불린 날은 끝났지만, 그 선택이 맞았는지를 보여줄 기록은 이제 쌓이기 시작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