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상백 한화 4년 78억 대실패라 불리는 이유, 숫자로 다시 보니 더 아팠다

기대값이 너무 선명했던 계약
얼마 전 한화 선발진 기록을 다시 훑어보다가, 엄상백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4년 최대 78억 원. 이 숫자는 그냥 큰돈이 아니라 “이 선수는 선발 로테이션 한 자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선언에 가까웠다. 계약금 34억 원, 연봉 총액 32억 5천만 원, 옵션 11억 5천만 원이라는 구조도 그렇다. 옵션이 붙어 있긴 했지만, 한화가 바라본 그림은 분명했다. 류현진, 외국인 투수, 젊은 선발 자원 사이에서 엄상백이 4~5선발을 넘어 꾸준히 이닝을 먹어주는 카드가 되는 것.
사실 2024년 KT에서의 엄상백은 FA 시장에서 충분히 매력적이었다. 29경기, 156과 3분의 2이닝, 13승 10패, 평균자책점 4.88. 압도적인 에이스형 기록은 아니었지만, 선발투수가 귀한 시장에서는 150이닝 이상을 던진 사이드암 선발이라는 점만으로 가치가 붙었다. 특히 한화처럼 가을야구를 노리는 팀에는 “계산 가능한 국내 선발”이 꽤 비싸게 팔릴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문제는 계약 직후부터 계산이 무너졌다는 데 있다. FA 계약은 과거 기록에 대한 보상이면서도, 실제 평가는 미래 이닝에서 갈린다. 엄상백의 경우 그 미래 이닝이 너무 빨리 사라졌다.
2025년 기록이 말한 첫 번째 균열
2025시즌 엄상백의 성적은 28경기, 2승 7패, 80과 3분의 2이닝, 평균자책점 6.58, WHIP 1.79였다. 숫자만 놓고 보면 꽤 냉정하다. 선발투수로 기대했던 선수의 이닝이 100이닝에도 닿지 못했고, 평균자책점은 6점대 중반까지 올라갔다. WHIP 1.79는 매 이닝 주자를 계속 내보냈다는 뜻이라 경기 흐름을 안정시키기 어려웠다.
더 뼈아픈 건 한화가 2025년에 잘했다는 점이다. 팀이 전체적으로 무너진 시즌이었다면 부진이 묻힐 수도 있다. 하지만 한화는 오랜 기다림 끝에 가을야구 분위기를 만들었고, 마운드 경쟁력도 돋보였다. 외국인 투수 조합이 승수를 쌓고, 다른 선발 자원들이 버텨주면서 팀의 방향은 위로 향했다. 그럴수록 78억 원을 투자한 국내 선발의 공백은 더 또렷하게 보였다.
선발투수에게 가장 기본적인 언어는 이닝이다. 평균자책점이 조금 높아도 150이닝을 던지면 팀 운영에 의미가 생긴다. 반대로 이닝도 줄고 실점 억제도 안 되면, 벤치는 불펜 소모와 로테이션 재편을 동시에 떠안게 된다. 엄상백의 2025년은 바로 그 지점에서 한화 팬들에게 답답한 시즌이었다.
왜 대실패라는 말이 나오는가
“한화 4년 78억 대실패”라는 표현은 자극적이지만, 팬들이 그렇게 반응하는 이유도 있다. 계약 규모와 실제 기여도의 차이가 너무 컸기 때문이다. 2024년 156과 3분의 2이닝을 던진 투수가 이적 첫해 80과 3분의 2이닝에 그쳤다. 단순 계산으로도 이닝이 거의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승수도 13승에서 2승으로 떨어졌다. 물론 승수는 타선 지원과 불펜 변수의 영향을 받지만, 평균자책점 6.58과 WHIP 1.79가 같이 붙으면 변명의 폭이 좁아진다.
구위 문제만으로 보기에도 복잡했다. 엄상백은 원래 타자를 압도하는 강속구형 투수라기보다 타이밍, 코스, 변화구 조합으로 승부하는 유형이다. 이런 투수는 제구가 흔들리거나 카운트가 불리해지면 급격히 어려워진다. 낮게만 던지려다 볼카운트 싸움에서 밀리고, 몰린 공이 장타로 연결되면 선발투수의 경기 운영 능력이 크게 흔들린다.
- 2024년 KT: 29경기, 13승 10패, 156과 3분의 2이닝, 평균자책점 4.88
- 2025년 한화: 28경기, 2승 7패, 80과 3분의 2이닝, 평균자책점 6.58
- 계약 규모: 4년 최대 78억 원
- 2026년 변수: 팔꿈치 수술로 시즌 운영 계획에서 이탈
이 정도 대비면 팬들이 “비싸게 샀다”를 넘어 “실패 계약 아니냐”고 말하는 건 자연스럽다. 특히 FA는 샐러리캡과 선수단 구성에 직접 영향을 준다. 한 명에게 큰돈을 쓰면 다른 보강의 폭이 좁아진다. 그래서 고액 FA의 부진은 개인 성적표에서 끝나지 않고, 팀 운영 평가로 번진다.
2026년 수술이 만든 더 어려운 계산
2026년에는 반등을 기대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시즌 초반부터 팔꿈치 문제가 터졌다. 3월 31일 KT전에서 짧게 던진 뒤 엔트리에서 빠졌고, 이후 우측 팔꿈치 내측측부인대 재건술과 뼛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토미 존 수술은 투수에게 복귀까지 긴 시간이 필요한 수술이다. 보통 1년 이상을 바라보는 경우가 많고, 돌아온 뒤에도 경기 감각과 구위를 되찾는 시간이 따로 필요하다.
이러면 4년 계약의 시간표가 굉장히 빡빡해진다. 2025년은 부진, 2026년은 수술과 재활. 계약 절반이 실질 기여 없이 지나가는 구조가 된다. 엄상백이 2027년에 돌아온다고 해도, 바로 150이닝 선발로 계산하는 건 무리다. 재활 복귀 투수에게 가장 어려운 건 단순히 공을 던지는 게 아니라, 선발 로테이션을 버틸 만큼 반복해서 회복하고 다시 던지는 몸을 만드는 일이다.
그래도 완전히 끝난 평가는 아니다
솔직히 지금 시점에서 실패라는 평가는 피하기 어렵다. 다만 선수 인생 전체를 닫아버릴 단계는 아니다. 엄상백은 아직 30대 초반으로 볼 수 있는 나이고, 사이드암이라는 희소성도 남아 있다. 부상 전의 감각을 회복하고, 선발이 어렵다면 롱릴리프나 스윙맨으로라도 역할을 찾을 여지는 있다.
다만 돈값이라는 표현으로 다시 돌아가면 기준은 냉정해진다. 78억 원 계약의 기대치는 단순한 복귀가 아니다. 1군에서 버티는 정도가 아니라, 팀이 시즌을 설계할 때 “여기는 엄상백이 맡는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정도까지 올라오지 못하면 이 계약은 한화 FA 역사에서 꽤 오래 회자될 가능성이 크다.
한화가 얻은 교훈도 분명하다
이 계약을 두고 한화만 탓하기도 애매한 부분은 있다. 당시 시장에 선발 자원이 많지 않았고, 2024년 엄상백의 이닝 소화는 분명 매력적인 카드였다. 팀이 승부를 걸어야 하는 타이밍이라면 과감한 투자는 필요하다. 문제는 선발투수 FA가 원래 가장 위험한 상품이라는 점이다. 투수는 부상 리스크가 크고, 한 시즌의 이닝 증가가 다음 시즌 부담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그래서 이 사례는 단순히 “엄상백이 못했다”로 끝내기보다, FA 선발투수를 평가할 때 무엇을 더 봐야 하는지 보여준다. 이닝 수만 볼 게 아니라 구종별 피안타, 볼넷 흐름, 체력 저하 구간, 최근 몇 년간의 부상 이력, 투구폼의 반복성까지 같이 봐야 한다. 특히 사이드암 선발은 타자들이 익숙해졌을 때 대응 방식이 달라질 수 있어, 리그 내 반복 노출 이후의 성적도 중요하다.
엄상백의 한화 생활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까지의 흐름만 놓고 보면 “4년 78억 대실패”라는 키워드가 왜 따라붙는지는 숫자가 먼저 말해준다. 팬 입장에서는 화가 날 수밖에 없다. 동시에 스포츠가 늘 그렇듯, 이 이야기가 완전히 굳어지는 순간은 마지막 공을 던진 뒤다. 엄상백이 다시 마운드에 선다면, 이제 필요한 건 기대감이 아니라 증명이다. 말보다 이닝, 이름값보다 아웃카운트가 먼저 쌓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