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기영이 삼성에서 보배가 된 이유, 기록을 다시 찍어보니 보이는 진짜 이야기

얼마 전 삼성 경기를 보다가 임기영이 길게 버텨주는 장면에서 괜히 투구 수를 다시 세어봤다. 스코어보드에 크게 박히는 세이브도 아니고, 하이라이트 첫 장면도 아니었다. 그런데 선발이 일찍 흔들린 날 2이닝, 3이닝을 먹어주는 투수는 시즌 전체로 보면 꽤 비싼 자원이다. 삼성에서 임기영이 ‘보배’처럼 보이는 이유도 딱 그 지점에 있다.
삼성이 원한 건 화려함보다 빈칸을 메우는 투수였다
임기영은 2025년 11월 19일 2차 드래프트를 통해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 KBO 공식 선수 정보 기준으로 등번호는 38번, 우언우타 투수, 경력은 한화-상무-KIA를 거쳐 삼성으로 이어진다. 사실 이름값만 놓고 보면 대형 영입이라고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삼성 입장에서는 선발과 필승조 사이의 애매한 공간을 메울 투수가 필요했다.
야구에서 이 공간은 생각보다 크다. 선발이 5회를 못 채우는 날, 접전인데 필승조를 너무 일찍 쓰기 애매한 날, 전날 연장전으로 불펜이 털린 다음 날. 이런 경기에서 1이닝짜리 강속구 불펜보다 2~3이닝을 책임질 수 있는 투수가 더 절실할 때가 있다. 임기영은 바로 그 사용법에 맞는 투수다.
2026년 숫자는 ‘대박’보다 ‘회복’에 가깝다
기록을 보면 더 선명하다. Daum 스포츠의 2026시즌 기록 기준 임기영은 34와 2/3이닝, 평균자책 3.89, WHIP 1.30, 탈삼진 21개를 기록 중이다. TVING의 앞선 집계에서는 25와 2/3이닝 평균자책 4.56, WHIP 1.36으로 표시됐는데, 시간이 지나며 이닝이 늘고 평균자책도 내려간 흐름이다. 숫자 하나만 떼어놓으면 리그를 지배하는 불펜은 아니다. 근데 삼성에서의 가치는 단순 평균자책보다 ‘얼마나 자주, 얼마나 길게 버텼나’에 더 가깝다.
특히 2025년 KIA 시절 기록이 좋지 않았다. TVING 통산 기록 표에 따르면 2025년은 10경기 평균자책 13.00, WHIP 3.00으로 흔들렸다. 그 다음 시즌 새 팀에서 30이닝 이상을 던지며 3점대 후반 평균자책으로 버티고 있다는 건 꽤 큰 반등이다. 투수에게 팀을 옮긴 첫해는 단순 적응 문제가 아니다. 포수 사인, 수비 위치, 홈구장, 등판 간격, 벤치가 원하는 역할까지 전부 다시 맞춰야 한다.
임기영의 장점은 확실한 역할 인식이다
임기영을 볼 때 가장 흥미로운 건 욕심을 덜어낸 투구다. 선발처럼 긴 호흡을 가져가되, 불펜처럼 첫 타자 승부에 신경을 많이 쓴다. 예전 KIA 시절에는 선발과 불펜을 오가며 쌓은 경험이 있었고, 2023년에는 64경기에 나와 평균자책 2.96, WHIP 0.91을 찍은 시즌도 있었다. 그때의 임기영은 짧은 구간에서 타자 타이밍을 빼앗는 능력이 좋았다.
삼성에서 그 경험은 롱릴리프라는 형태로 다시 쓰이고 있다. 매일신문도 2026년 5월 기사에서 임기영을 두고 ‘롱릴리프로 불펜 소모를 줄이는 자원’이라는 맥락을 짚었다. 이 표현이 딱 맞다. 팬들은 흔히 승리투수, 홀드, 세이브 같은 결과 기록에 눈이 가지만, 벤치는 다른 숫자도 본다. 전날 누가 몇 개를 던졌는지, 내일 선발이 몇 이닝을 기대할 수 있는지, 이번 주 원정 이동이 있는지까지 같이 계산한다.
삼성 불펜에서 임기영이 갖는 진짜 무게
삼성은 최근 몇 시즌 동안 젊은 투수들의 성장과 베테랑 활용을 동시에 고민해야 했다. 원태인 같은 확실한 선발 축이 있어도, 긴 시즌에는 4~5선발과 불펜 사이에서 균열이 생긴다. 여기서 임기영 같은 투수가 2이닝 무실점, 혹은 3이닝 1실점 정도로 버텨주면 경기 하나의 체감이 달라진다.
- 선발이 조기 강판된 경기에서 필승조 투입을 늦출 수 있다.
- 대패 흐름을 막아 다음 경기 불펜 운영을 살릴 수 있다.
- 접전 중반에 다양한 투수 교체 선택지를 만들어준다.
- 젊은 투수들이 무리한 멀티이닝을 떠안지 않게 해준다.
이건 박스스코어에 예쁘게 남지 않는다. 하지만 시즌이 144경기로 쌓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불펜은 한 명이 잘 던져서 강해지는 게 아니라, 누군가가 과부하를 막아줄 때 버틴다. 임기영은 바로 그 부담을 나눠 갖는 쪽에 가깝다.
왜 삼성 팬들이 더 반응하는가
또 하나 재미있는 건 지역성과 서사다. 임기영은 대구수창초, 경운중, 경북고를 거친 선수다. 삼성 유니폼을 입었다는 사실 자체가 팬들에게는 ‘돌아온 선수’의 감각을 준다. 물론 프로 스포츠에서 고향 이야기가 실력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래도 같은 1이닝을 던져도 팬들이 받아들이는 온도는 달라진다.
솔직히 임기영이 매 경기 압도적인 구위로 찍어누르는 유형은 아니다. 피안타가 완전히 적은 투수도 아니고, 삼진으로 모든 위기를 끝내는 마무리형 투수도 아니다. 대신 그는 경기 흐름을 길게 읽는 쪽에 강점이 있다. 타순이 한 바퀴 가까이 돌아도 무너지지 않는 경험, 빠르게 승부할 때와 유인구를 던질 때를 구분하는 감각, 그리고 무너진 경기에서도 투구 수를 관리하며 이닝을 지우는 능력. 이게 삼성에서 꽤 귀하다.
보배라는 말은 이런 선수에게 더 잘 붙는다
스포츠에서 ‘보배’라는 표현은 꼭 슈퍼스타에게만 붙는 말은 아니라고 본다. 오히려 시즌 중반이 지나면 팬들은 안다. 진짜 고마운 선수는 팀이 삐걱거릴 때 말없이 한 칸을 메우는 선수라는 걸. 임기영의 2026년 삼성 생활은 그런 쪽에 가깝다. 2025년의 부진한 숫자에서 벗어나 30이닝 이상을 책임졌고, 평균자책도 3점대 후반까지 끌어내렸다. 이 정도면 2차 드래프트 자원에게 기대할 수 있는 현실적인 최고치에 꽤 가깝다.
그래서 임기영을 볼 때는 단순히 승패만 보면 손해다. 그는 삼성 불펜의 가장 빛나는 이름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시즌 전체의 피로도를 낮추고, 벤치의 선택지를 넓히고, 경기가 망가지는 속도를 늦추는 투수다. 기록을 조금만 옆으로 돌려보면, 왜 삼성에서 임기영이 보배처럼 보이는지 꽤 분명해진다. 참고한 기록은 KBO 공식 선수 페이지, TVING KBO 선수 기록, Daum 스포츠 선수 기록, 매일신문 2025년 11월 19일 및 2026년 5월 27일 기사 기준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