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유나가 빠진 도로공사, 이지윤까지 보니 초비상이 다른 이야기로 보였다

얼마 전 도로공사 경기 흐름을 다시 보는데, 배유나 이름 하나가 빠졌을 때 팀의 공기가 얼마나 달라지는지 새삼 느껴졌다. 배구는 한 명 빠진다고 단순히 한 자리만 비는 스포츠가 아니다. 특히 미들블로커는 블로킹 높이, 속공 타이밍, 상대 공격수의 선택지까지 흔드는 자리라서 빈칸이 훨씬 크게 보인다.
그래서 배유나 부상 소식이 나왔을 때 도로공사 팬들이 느낀 불안은 꽤 현실적이었다. 2025년 10월 21일 페퍼저축은행전에서 어깨 탈구가 있었고, 당시에는 짧게 3주, 길게 6주까지도 이야기가 나왔다. 베테랑 미들블로커가 시즌 초반에 빠지는 건 말 그대로 초비상이다. 그런데 흥미로운 건, 그 위기가 이지윤이라는 신인의 등장과 맞물리면서 전혀 다른 흐름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배유나 공백이 왜 크게 느껴졌나
배유나는 단순히 득점만 해주는 선수가 아니다. 중앙에서 상대 세터를 묶어두고, 이동공격으로 블로커를 흔들고, 어려운 상황에서 리듬을 다시 잡아주는 선수다. 도로공사처럼 수비 조직력과 연결을 바탕으로 버티는 팀에겐 이런 베테랑의 존재감이 더 크다.
실제로 배유나는 2025-26시즌 어깨 부상에도 28경기, 103세트에 나와 254득점을 기록했다. 30대 후반의 미들블로커가 이 정도 출전량과 생산성을 보여준다는 건 체력 관리만의 문제가 아니다. 경기 읽는 속도, 코스 선택, 블로킹 위치 선정이 몸에 배어 있다는 뜻이다.
근데 바로 그 지점 때문에 부상 공백이 더 무섭다. 대체 선수는 높이만 맞춘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세터와의 호흡, 리시브가 흔들렸을 때 속공을 살리는 타이밍, 상대 외국인 공격수 앞에서 손 모양을 어떻게 가져갈지까지 순간 판단이 필요하다. 도로공사 입장에서는 배유나 한 명의 이탈이 중앙 전체의 안정감을 흔드는 사건이었다.
이지윤 등장이 만든 반전
그런데 이 초비상 상황에서 가장 크게 튀어나온 이름이 이지윤이었다. 188cm의 신장, 신인 드래프트 전체 1순위라는 기대치, 그리고 고교 무대에서 이미 평가받은 기본기. 사실 스펙만 보면 언젠가 터질 선수라는 건 예상할 수 있었다. 문제는 ‘언제’였는데, 도로공사는 예상보다 훨씬 빨리 그 카드를 꺼내야 했다.
이지윤은 배유나의 부상 공백 속에서 곧바로 코트에 섰고, 도로공사의 연승 흐름에 올라탔다. 당시 도로공사는 10연승을 달리며 10승 1패, 승점 28점으로 선두권을 질주했다. 신인이 들어왔는데 팀이 흔들리기는커녕 더 달렸다. 이건 운으로만 설명하기 어렵다.
- 배유나 공백: 중앙 경험치와 경기 조율 능력 손실
- 이지윤 투입: 높이와 에너지, 빠른 적응력 확보
- 팀 흐름: 10연승으로 위기를 성적 상승 구간으로 전환
- 의미: 단기 대체가 아니라 세대교체의 예고편
솔직히 신인 미들블로커가 처음부터 이렇게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경우는 흔하지 않다. 미들은 공격 득점보다 보이지 않는 실수가 더 크게 드러나는 포지션이다. 블로킹 타이밍이 반 박자 늦으면 상대 공격수에게 길이 열린다. 속공 타이밍이 어긋나면 세터의 선택지도 줄어든다. 그런데 이지윤은 그런 부담 속에서도 자기 존재감을 남겼다.
초비상에서 세대교체 신호로
도로공사의 중앙에는 이미 김세빈이라는 또 다른 젊은 축이 있다. 김세빈은 2023년 전체 1순위, 이지윤은 2025년 전체 1순위다. 두 명의 1순위 미들블로커가 한 팀에서 동시에 성장한다는 건 리그 전체로 봐도 꽤 흥미로운 장면이다.
여기서 배유나의 역할은 단순히 ‘빠진 선수’가 아니다. 오히려 배유나가 있었기 때문에 이지윤의 성장이 더 선명하게 보인다. 베테랑이 세워둔 기준이 있고, 그 기준을 신인이 어디까지 따라잡는지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위기 상황에서 들어간 선수는 보통 버티는 것만으로도 평가를 받는다. 그런데 이지윤은 버티는 수준을 넘어 도로공사의 상승세 안에서 자기 몫을 했다.
물론 젊은 미들블로커 조합에는 변수도 있다. 시즌이 길어질수록 상대 팀은 패턴을 분석한다. 속공 타이밍, 이동공격 빈도, 블로킹 약점 코스가 누적 데이터로 드러난다. 신인 때는 낯섦이 무기지만, 2년 차부터는 상대가 준비하고 들어온다. 그래서 진짜 평가는 ‘반짝 활약’ 다음에 온다.
배유나 이적 이후 더 커진 질문
2026년 4월 배유나는 사인 앤 트레이드로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었다. 도로공사는 대신 세터 이수연을 영입했다. 이 장면은 도로공사의 방향을 꽤 분명하게 보여준다. 베테랑 중심의 안정감에서 젊은 중앙 라인과 새로운 조합으로 넘어가는 흐름이다.
이 선택이 곧바로 편안한 길이라는 뜻은 아니다. 배유나가 빠진 중앙은 숫자로만 메우기 어렵다. 254득점의 생산성도 크지만, 더 큰 건 경기 중 흔들릴 때 잡아주는 무게감이다. 이지윤과 김세빈이 높이와 재능을 갖췄다면, 이제 필요한 건 한 시즌 전체를 버티는 꾸준함이다.
도로공사 초비상이라는 표현은 처음엔 부상과 공백 때문에 나왔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보니 이 말은 조금 다른 의미로 읽힌다. 정말 위험한 상황이기도 했지만, 동시에 팀의 다음 얼굴을 강제로 확인한 순간이기도 했다. 배유나는 도로공사의 현재를 오래 지탱한 선수였고, 이지윤은 그 빈자리가 생겼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미래였다.
숫자 뒤에 남는 장면
기록지만 보면 10연승, 10승 1패, 254득점, 188cm 같은 숫자가 먼저 보인다. 그런데 그 숫자 사이에는 베테랑의 부상, 신인의 갑작스러운 투입, 팀의 전술 변화, 그리고 팬들이 느낀 불안과 기대가 같이 들어 있다. 나는 이런 흐름이 스포츠를 더 재밌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도로공사는 이제 배유나 없는 시간을 살아가야 한다. 대신 이지윤이라는 이름은 더 자주 불릴 가능성이 크다. 초비상에서 시작된 이야기가 팀의 체질 변화로 이어질지, 아니면 베테랑 공백의 무게를 다시 실감하게 될지는 앞으로의 긴 시즌이 말해줄 것이다. 다만 분명한 건 하나 있다. 도로공사의 중앙은 이제 과거와 현재, 미래가 한꺼번에 겹쳐 보이는 가장 흥미로운 포지션이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