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마쏘 카드, 기록지를 다시 보니 꽤 영리했다

얼마 전 챔피언결정전 기록지를 다시 넘겨보다가 대한항공 마쏘 이름에서 한참 멈췄다. 처음엔 “챔프전 직전 외국인 선수 교체가 맞나?”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숫자를 따라가 보니 이 선택은 단순한 도박이라기보다 대한항공 배구의 구조를 바꾼 승부수에 가까웠다.
러셀에서 마쏘로, 타이밍부터 시끄러웠다
대한항공은 2025-26시즌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한 뒤 3월 19일 카일 러셀 대신 쿠바 출신 호세 마쏘를 영입했다. 보통 외국인 선수 교체는 부상이나 장기 부진 때 떠올리는데, 챔피언결정전을 앞둔 시점이라 더 크게 보였다. 팬들 사이에서 논란이 나온 것도 자연스러웠다.
마쏘는 204cm의 신장을 가진 선수다. 쿠바 국가대표 경력이 있고, 독일 리그에서는 미들블로커로 좋은 평가를 받았다. 이란 리그에서는 아포짓 스파이커로도 뛰었다. 여기서 포인트가 생긴다. 대한항공이 데려온 건 단순히 많이 때리는 외국인 공격수가 아니라, 중앙과 라이트를 모두 만질 수 있는 전술 카드였다.
데뷔전이 챔프전 1차전이었다는 말의 무게
V리그 적응도 안 된 선수가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 바로 들어간다. 이건 쉬운 그림이 아니다. 그런데 마쏘는 첫 경기에서 18득점, 공격 성공률 71.43%를 찍었다.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을 세트 스코어 3-2로 잡았고, 시리즈 초반 주도권을 가져갔다.
사실 외국인 선수라면 팬들은 25점, 30점짜리 화력을 먼저 기대한다. 그런데 마쏘의 첫인상은 조금 달랐다. 무지막지하게 공을 몰아받는 유형이라기보다, 필요한 순간 중앙에서 블로킹과 속공으로 상대 리듬을 끊는 쪽에 가까웠다. 임동혁이 아포짓 역할을 가져가고, 마쏘가 미들블로커로 버티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숫자로 보면 장단점이 선명했다
- 챔프전 1차전: 18득점, 공격 성공률 71.43%
- 챔프전 2차전: 15득점으로 흐름 유지
- 챔프전 3차전: 7득점으로 존재감 감소
- 챔프전 4차전: 10득점, 팀은 연속 완패
- 챔프전 5차전: 17득점, 블로킹 6개, 서브 1개, 공격 성공률 55.56%
이 흐름이 흥미롭다. 1, 2차전은 “성공한 교체”처럼 보였고, 3, 4차전은 “이게 맞았나?”라는 질문을 만들었다. 그런데 5차전에서 다시 답을 냈다. 특히 블로킹 6개는 단순 득점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대캐피탈 공격수들에게 코스 선택을 강요했고, 세터의 배분에도 압박을 걸었다.
대한항공이 마쏘에게 원한 건 폭발력만이 아니었다
대한항공은 원래 세터 한선수를 중심으로 빠른 배분, 국내 공격수 활용, 안정적인 리시브 이후 전개가 강한 팀이다. 이런 팀에 외국인 선수가 모든 공을 해결하는 방식으로 들어오면 오히려 기존 리듬이 깨질 수 있다. 그래서 마쏘의 가치는 득점 순위표만으로 판단하면 조금 놓치는 부분이 생긴다.
마쏘가 중앙에 서면 상대 블로커는 임동혁, 정지석, 정한용만 볼 수 없다. 속공 한 방을 의식해야 하고, 낮게 깔리는 빠른 공격에도 반응해야 한다. 근데 배구에서 이 0.2초의 망설임은 꽤 크다. 블로킹 타이밍이 늦어지고, 수비 위치가 반 박자 흐트러진다. 기록지에는 ‘마쏘 1득점’으로 찍히지만, 실제로는 옆 공격수의 성공률까지 건드리는 장면이 나온다.
5차전 17득점이 말해준 것
2026년 4월 10일 열린 챔피언결정전 5차전에서 대한항공은 현대캐피탈을 3-1로 이겼다. 세트 점수는 25-18, 25-21, 19-25, 25-23. 시리즈 전적 3승 2패였다. 컵대회 우승, 정규리그 1위, 챔프전 우승까지 묶어 구단 사상 두 번째 트레블도 완성했다.
그 경기에서 마쏘는 17득점을 올렸다. 공격 성공률 55.56%도 나쁘지 않았지만, 더 크게 남는 건 블로킹 6개다. 챔프전 마지막 경기에서 중앙 블로커가 직접 흐름을 끊어낸다는 건 팀 전체에 주는 안정감이 다르다. 현대캐피탈은 레오와 허수봉을 앞세워 반격했지만, 대한항공은 마쏘-임동혁-정지석-정한용으로 득점 부담을 나눴다.
솔직히 논란이 없었다고 말하긴 어렵다. 챔피언결정전 직전 교체라는 방식은 앞으로도 토론거리가 될 수밖에 없다. 다만 선수 개인의 경기력만 놓고 보면, 마쏘는 “급하게 온 외국인 선수” 이상의 역할을 했다. 특히 대한항공처럼 시스템 배구를 하는 팀에서는 30득점 외국인보다 17득점에 블로킹 6개를 얹는 선수가 더 잘 맞는 날도 있다.
마쏘의 진짜 이야기는 기록 사이에 있었다
대한항공 마쏘를 보면 스포츠에서 숫자는 차갑지만, 그 숫자가 만들어진 맥락은 꽤 뜨겁다는 생각이 든다. 18득점으로 시작해 7득점까지 내려갔다가, 마지막 5차전에서 다시 17득점과 블로킹 6개로 올라왔다. 이 곡선 자체가 챔피언결정전의 압박을 보여준다.
팬 입장에서는 여전히 의견이 갈릴 수 있다. 교체 타이밍은 불편했고, 외국인 선수 제도에 대한 질문도 남았다. 그런데 코트 안의 마쏘는 분명히 자기 몫을 했다. 대한항공이 그를 통해 얻은 건 단순한 새 얼굴이 아니라, 마지막 경기에서 블로킹으로 우승의 방향을 틀어버릴 수 있는 높이와 변칙성이었다. 그래서 나는 이 선택을 완벽한 미담보다는, 위험을 안고도 숫자로 답을 낸 사례로 기억하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