잭 쿠싱을 기록으로 따라가 봤더니, 한화의 6주짜리 선택이 남긴 이야기

얼마 전 한화 불펜 기록을 훑다가 잭 쿠싱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엄청난 장기 계약도 아니고, 시즌 전체를 끌고 간 외국인 에이스도 아니었다. 그런데 숫자를 하나씩 보면 꽤 흥미롭다. 짧게 왔다가 떠난 투수인데, 그 짧은 기간 안에 선발, 중간, 마무리의 그림자가 전부 들어 있었다.
잭 쿠싱은 미국 오클라호마주 이니드 출신 우완 투수다. 조지타운대를 거쳐 2019년 메이저리그 드래프트 22라운드에서 오클랜드 구단의 지명을 받았다. 신체 조건은 190cm, 92kg 안팎으로 기록되어 있고, 우투우타 투수다. 이력만 놓고 보면 특급 유망주라기보다 계속 다음 단계를 두드린 실전형 투수에 가깝다.
한화가 쿠싱을 부른 이유
쿠싱의 KBO행은 처음부터 장기 프로젝트라기보다 긴급 처방에 가까웠다. 한화는 오웬 화이트의 부상 공백을 메워야 했고, 쿠싱은 2026년 4월 임시 대체 외국인 선수로 합류했다. 계약 기간은 6주, 총액은 9만 달러로 알려졌다. 사실 외국인 투수에게 기대하는 전형적인 그림은 선발 로테이션 고정이다. 그런데 쿠싱의 한화 생활은 그 방향으로만 흘러가지 않았다.
공식 KBO 기록 기준으로 쿠싱은 2026시즌 한화에서 16경기에 등판했다. 그중 선발은 1경기, 나머지 15경기는 불펜이었다. 이 숫자가 꽤 중요하다. 구단이 그를 데려온 명분은 선발 공백이었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불펜의 급한 불을 끄는 쪽으로 쓰임새가 바뀌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 2026 KBO 기록: 16경기, 1승 2패, 4세이브
- 이닝: 20과 3분의 2이닝
- 평균자책점: 4.79
- WHIP: 1.26
- 탈삼진 26개, 볼넷 6개
겉으로 보이는 평균자책점 4.79만 보면 애매하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런데 WHIP 1.26, 탈삼진 26개, 볼넷 6개를 같이 놓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제구가 크게 흔들린 투수는 아니었다. 9이닝당 탈삼진은 11개를 넘고, 볼넷은 2.6개 수준이다. 짧은 이닝에서 타자를 힘으로 제압할 수 있는 요소는 분명히 있었다.
기록이 말하는 장점과 약점
쿠싱의 KBO 기록에서 제일 먼저 보이는 장점은 삼진이다. 20과 3분의 2이닝 동안 26탈삼진이면 불펜 투수로서는 충분히 눈에 띈다. 볼넷 6개도 나쁘지 않다. 탈삼진과 볼넷 비율은 4.33이다. 이 정도면 최소한 마운드 위에서 스스로 무너지는 유형은 아니었다고 봐도 된다.
그런데 홈런 3개가 발목을 잡는다. 이닝이 많지 않은 투수에게 피홈런 3개는 체감이 크다. 평균자책점이 4점대 후반까지 오른 것도 결국 장타 허용의 영향이 컸다. KBO 타자들이 빠른 공만 기다리는 리그는 아니다. 카운트 싸움에서 유리해도 실투 하나가 담장을 넘어가는 장면이 나오면, 짧은 계약을 뛰는 외국인 투수에게는 그 한 타석이 평가 전체를 흔든다.
미국 마이너리그 기록을 보면 이 흐름이 더 선명하다. 2024년 더블A 미들랜드에서는 44이닝 평균자책점 2.86, WHIP 1.09로 안정적이었다. 하지만 2025년 트리플A 라스베이거스에서는 79와 3분의 2이닝 11승 2패를 기록하면서도 평균자책점은 6.67이었다. 승패만 보면 잘 던진 시즌처럼 보이는데, 피안타 99개와 피홈런 19개가 같이 붙어 있다. 숫자가 말하는 건 꽤 솔직하다. 쿠싱은 타자를 잡을 힘이 있지만, 공이 몰리면 크게 맞을 위험도 함께 안고 있는 투수다.
선발로 왔지만 불펜에서 보인 얼굴
쿠싱의 한화 생활에서 재미있는 지점은 역할 전환이다. 외국인 투수가 임시 계약으로 들어왔는데, 선발로만 고집하지 않고 불펜에서 세이브 상황까지 맡았다. 5월 7일 KIA전, 5월 9일 LG전, 5월 15일 KT전 등에서는 세이브 기록도 남겼다. 5월 14일 키움전에서는 1이닝 무실점으로 흐름을 이어갔다.
이건 팀 사정과 선수 성향이 맞물린 결과다. 한화는 당시 불펜 운영에서 즉시 쓸 수 있는 카드가 필요했고, 쿠싱은 역할을 가리지 않는 쪽에 가까웠다. 선발로 긴 이닝을 책임지는 타입이라기보다, 짧게 힘을 쓰며 삼진을 뽑아내는 장면에서 매력이 더 잘 드러났다. 물론 그렇다고 완벽한 마무리형 투수였다는 뜻은 아니다. 1점 차, 주자 있는 상황, 중심 타선을 만나는 장면에서는 피홈런 리스크가 늘 따라다녔다.
쿠싱이 남긴 건 숫자보다 맥락이다
잭 쿠싱의 KBO 성적을 1승 2패 4세이브, 평균자책점 4.79로만 적으면 조금 밋밋하다. 그런데 그 안을 들여다보면 훨씬 입체적이다. 임시 대체 외국인 선수로 왔고, 선발 후보로 분류됐지만 실제로는 불펜의 빈틈을 메웠다. 삼진 능력은 확실했고, 볼넷 관리도 괜찮았다. 대신 장타 한 방이 전체 인상을 흔드는 약점도 뚜렷했다.
솔직히 이런 선수는 팬 입장에서 오래 기억에 남는다. 압도적인 기록을 남긴 스타는 아니어도, 팀이 정말 필요할 때 와서 여러 역할을 받아들인 투수였기 때문이다. 야구 기록은 늘 성적표처럼 보이지만, 그 숫자가 나온 상황까지 같이 보면 선수가 훨씬 선명해진다. 쿠싱의 한화 시절도 딱 그렇다. 짧았지만, 꽤 많은 이야기를 남긴 6주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