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후가 샌프란시스코 최악 타자라고? 숫자를 다시 봤더니 다른 이야기가 보였다

얼마 전 샌프란시스코 경기 기록을 훑다가 ‘이정후, 샌프란시스코 최악 타자’라는 식의 표현을 보고 잠깐 멈췄다. 솔직히 자극적인 문장이다. 그런데 야구는 늘 그렇다. 한 달을 자르면 최악처럼 보이고, 시즌 전체를 놓고 보면 전혀 다른 그림이 나온다. 이정후라는 타자는 특히 더 그렇다. 홈런 30개로 설명되는 유형이 아니라, 타율·컨택·타구 방향·출루 흐름을 같이 봐야 실체가 잡힌다.
‘최악 타자’라는 말이 나온 배경
이 표현의 출발점은 2025년 중반의 긴 침체였다. 당시 이정후는 시즌 초반 30경기에서 타율 .319, 출루율 .375, 장타율 .526으로 꽤 강하게 출발했다. 어깨 부상으로 짧게 끝난 2024년 이후 돌아온 첫 풀타임 시즌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기대감을 키우기에 충분한 출발이었다.
문제는 5월 이후였다. 한 구간에서 타율 .205, 출루율 .278, 장타율 .324까지 떨어졌고, 245타석 규모로 보면 리그 하위권 생산력이라는 평가가 붙었다. 팬 입장에서 답답한 건 단순히 안타가 안 나온다는 사실보다 타구의 힘이 같이 줄어든다는 느낌이었다. 맞히긴 맞히는데, 수비 시프트나 외야 위치를 흔들 만큼 강한 타구가 많지 않았다.
그래서 ‘샌프란시스코 최악 타자’라는 말은 완전히 허공에서 나온 건 아니다. 다만 그건 이정후의 선수 가치 전체가 아니라, 특정 기간의 타격 생산력에 붙은 딱지에 가깝다. 기간을 어디서 자르느냐에 따라 선수 평가는 꽤 거칠게 흔들린다.
2026년 숫자는 이미 다른 말을 하고 있다
2026년 기준으로 보면 이야기가 확 달라진다. 베이스볼 서번트 기준 이정후는 96경기에서 타율 .300, 출루율 .332, 장타율 .431, OPS .763을 기록했다. 안타는 108개, 2루타 21개, 3루타 4개, 홈런 6개다. 홈런형 외야수는 아니지만, 시즌 중반까지 3할 타율을 유지하면서 장타율도 .400대를 넘겼다면 ‘최악’이라는 단어와는 거리가 멀다.
더 흥미로운 건 삼진율이다. 2026년 이정후의 삼진율은 9.7% 수준이다. 메이저리그 평균이 20%를 훌쩍 넘는 환경에서 이 숫자는 꽤 특별하다. 요즘 타자들은 강한 타구를 위해 삼진을 어느 정도 감수한다. 그런데 이정후는 다른 길을 간다. 공을 배트에 맞히고, 그다음 코스와 주루로 가치를 만든다.
- 2024년: 37경기, 타율 .262, OPS .641
- 2025년: 150경기, 타율 .266, OPS .734
- 2026년: 96경기 기준 타율 .300, OPS .763
이 흐름을 보면 2025년의 침체가 선수의 한계라기보다 적응 과정의 굴곡처럼 보인다. 물론 완성형이라고 부르기엔 아직 애매하다. 볼넷 비율이 3.9%로 낮고, 배럴 비율도 2.2% 수준이라 폭발적인 장타 생산을 기대하긴 어렵다. 그래도 ‘못 치는 타자’와 ‘다른 방식으로 치는 타자’는 구분해야 한다.
이정후의 진짜 숙제는 장타보다 타순이다
이정후를 볼 때 자꾸 홈런 수만 보면 평가가 꼬인다. 그는 배리 본즈의 도시에서 뛰고 있지만, 본즈식 타자가 아니다. 오히려 루이스 아라에즈처럼 타율과 컨택으로 경기를 흔드는 쪽에 가깝다. 문제는 샌프란시스코 타선이 그 장점을 얼마나 잘 쓰느냐다.
2026년 샌프란시스코는 득점력 문제를 자주 드러냈다. 이정후가 5번에 놓이는 경기들도 있었는데, 사실 이 배치는 꽤 생각할 거리가 많다. 팀 내에서 가장 꾸준히 안타를 만드는 타자를 너무 뒤에 두면, 앞선 타자들이 출루하지 못하는 날에는 그의 타석 가치가 줄어든다. 반대로 1번이나 2번에 두면 더 많은 타석과 더 많은 득점 기회를 만들 수 있다.
물론 중심타선에 둘 이유도 있다. 득점권에서 공을 맞히는 능력, 좌투수 상대로 버티는 컨택, 병살 위험을 줄이는 주루 감각은 감독 입장에서 탐나는 카드다. 근데 샌프란시스코처럼 타선 전체가 자주 막히는 팀이라면, 가장 자주 살아나가는 타자를 앞쪽에 붙이는 쪽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수비 평가까지 섞이면 이야기가 더 복잡해진다
이정후 논쟁에서 타격만큼 자주 따라붙는 게 수비다. 2025년에는 중견수 수비 범위와 타구 판단에서 좋은 평가만 받은 건 아니었다. 현지에서도 외야 수비 문제를 꽤 강하게 짚었고, 샌프란시스코가 2026년을 앞두고 수비형 중견수를 데려오면서 이정후를 우익수로 옮기는 흐름이 생겼다.
이건 단순한 강등이라기보다 역할 재배치에 가깝다. 중견수는 외야에서 가장 넓은 범위를 책임지는 자리다. 반면 우익수는 송구와 타구 판단, 펜스 플레이가 더 중요하다. 이정후가 우익수에서 부담을 덜고 타격 리듬을 유지한다면 팀 전체 가치에는 오히려 플러스가 될 수 있다.
타격 지표만 놓고 보면 이정후는 샌프란시스코의 약점이 아니라 희소한 안정 장치에 가깝다. 다만 수비와 장타, 낮은 볼넷률까지 합쳐 보면 ‘좋은 선수인데 아직 프리미엄 선수라고 단정하긴 이른’ 위치다. 이 애매함이 논쟁을 만든다.
숫자는 이정후를 어떻게 말하고 있나
이정후를 평가할 때 가장 조심해야 할 건 기대치의 크기다. 6년 1억1300만 달러 계약을 맺은 선수에게 팬들이 더 큰 임팩트를 요구하는 건 자연스럽다. 그런데 계약 규모가 크다고 해서 모든 선수가 30홈런 타자가 되는 건 아니다. 샌프란시스코가 산 것은 홈런 파워보다 컨택, 나이, 외야 수비 가능성, 그리고 아시아 최고 수준 리그에서 검증된 타격 감각이었다.
2026년의 이정후는 그 기대 중 타격 정확도 쪽은 꽤 잘 증명하고 있다. 타율 3할, 낮은 삼진율, 꾸준한 안타 생산은 쉽게 나오는 기록이 아니다. 반대로 볼넷과 강한 타구 비율은 더 끌어올려야 한다. 이 두 부분이 올라오면 그는 ‘괜찮은 주전 외야수’에서 ‘상위권 타선의 핵심 조각’으로 넘어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샌프란시스코 최악 타자’라는 표현을 보면, 그 문장이 맞았던 짧은 순간과 지금의 숫자를 같이 봐야 한다고 느낀다. 이정후는 완벽하지 않다. 하지만 최악이라는 말로 덮기엔 이미 너무 많은 안타와 너무 낮은 삼진율을 쌓아두었다. 지금의 그는 화려하게 터지는 타자라기보다 매일 조금씩 경기의 확률을 바꾸는 타자에 가깝고, 그런 선수의 가치는 박스스코어 한 줄보다 시즌이 길어질수록 더 선명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