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성권 은퇴 소식에 기록을 다시 봤더니, 프로 꿈의 마침표가 더 묵직했다

얼마 전 선성권 은퇴 소식을 보고 나서, 이상하게 경기 결과보다 숫자들이 먼저 떠올랐다. 197cm, 114kg의 큰 체격, 우완 투수, 비선출 출신, 그리고 프로 무대를 향해 계속 밀어붙였던 시간들. 야구 팬 입장에서 이런 선수의 이야기는 단순히 ‘됐다, 안 됐다’로 끝나지 않는다. 기록지에는 짧게 남지만, 그 뒤에는 버티는 사람의 시간이 붙어 있다.
프로 꿈을 향한 길이 평범하지 않았다
선성권은 전형적인 엘리트 코스를 밟은 투수가 아니었다. 부산 출신으로 알려진 그는 비선출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야구판에 들어왔다. 보통 투수 유망주를 말할 때 고교 시절 성적, 드래프트 순번, 스카우트 리포트가 먼저 나오는데, 선성권의 출발점은 조금 달랐다. 그래서 팬들이 더 지켜봤다. 만들어진 유망주가 아니라, 스스로 판을 두드리는 선수였기 때문이다.
2019년 강속구 투수를 가리는 프로그램에서 최고 140km를 기록했다는 이력도 있다. 냉정하게 보면 140km는 프로 기준으로 압도적인 구속은 아니다. 그런데 비선출 투수가 공식적인 무대에서 그 정도 공을 던졌다는 건 다른 이야기다. 기본 신체 조건이 있고, 공을 던지는 힘도 있었다는 뜻이다. 문제는 야구가 구속 하나로만 되는 종목이 아니라는 데 있었다.
불꽃야구와 독립리그, 기회와 부담이 동시에 왔다
선성권이라는 이름이 더 넓게 알려진 계기는 방송 야구였다. 최강야구, 이후 불꽃야구 흐름 속에서 그는 팬들에게 익숙한 얼굴이 됐다. 방송은 선수에게 기회를 준다. 동시에 훨씬 많은 시선도 준다. 잘 던지면 응원이 커지고, 흔들리면 제구 하나까지 모두가 본다. 사실 투수에게 이건 꽤 큰 부담이다.
2024년 연천 미라클에서 독립리그 무대에 섰고, 이후 화성 코리요로 이어졌다. 연천 시절 기록을 보면 출발은 쉽지 않았다. 독립리그 데뷔전에서 ⅔이닝 4실점, 3피안타, 2볼넷, 2폭투를 남겼다. 투수에게 첫 등판은 기억에 오래 남는데, 이렇게 흔들리면 다음 공 하나가 더 무거워진다. 그래도 5월 말 고양 원더스전에서는 1이닝 무실점 2탈삼진, 파주 챌린저스전에서도 1이닝 무실점 2탈삼진을 기록했다. 짧은 이닝이지만 가능성을 보여준 장면이었다.
숫자가 말해준 과제, 결국 제구였다
선성권을 볼 때 가장 자주 따라붙은 단어는 제구였다. 큰 키에서 내려오는 공, 투수다운 체격, 힘 있는 투구는 매력적이었다. 그런데 프로를 노리는 투수에게는 반복 재현성이 필요하다. 같은 릴리스 포인트, 스트라이크존 안팎을 나누는 감각, 주자 있을 때의 밸런스까지 갖춰야 한다. 구속이 떨어지는 시점에는 그 부담이 더 커진다.
중국 프로야구 무대인 상하이 드래곤스에서 남긴 스프링 리그 기록도 이 흐름을 보여준다. 12경기 14⅓이닝, 평균자책점 6.28, 21피안타, 16볼넷, 11탈삼진, WHIP 2.62. 탈삼진이 아주 없는 투수는 아니었다. 타자를 헛스윙으로 돌려세울 힘은 있었다. 하지만 14⅓이닝에 볼넷 16개는 투수 운용을 어렵게 만든다. 이닝보다 많은 볼넷은 벤치가 계산하기 힘든 숫자다. 불펜 투수라면 더 그렇다. 짧은 이닝에서 출루를 줄여야 하는데, 볼넷이 많으면 한 타자 한 타자가 곧 위기가 된다.
그래도 이 기록을 실패라는 한 단어로만 묶기는 아깝다. 비선출 출신 선수가 독립리그를 거쳐 해외 프로 리그까지 닿았다는 건 흔한 루트가 아니다. 다만 프로 생존의 기준은 냉정하다. 가능성은 이야기의 출발점이고, 결국 계약과 등판 기회는 현재의 완성도를 본다.
은퇴 선언이 더 현실적으로 들렸던 이유
머니투데이 보도와 스튜디오시원 공개 내용에 따르면, 선성권은 2026년 7월 장시원 단장에게 야구를 그만두겠다는 뜻을 전했다. 그는 프로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경기 운용뿐 아니라 여러 면에서 준수해야 하고, 현재 구속도 많이 떨어진 상태라 프로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솔직히 이 말이 가장 아팠다. 팬은 아직 한 번 더를 말하고 싶지만, 선수 본인은 자기 몸과 공의 상태를 매일 확인한다.
또 그는 평일에는 화성 코리요에서 훈련하고, 주말에는 유소년 야구 아르바이트 코치로 일했다고 밝혔다. 배팅볼을 던지고 내야 펑고를 치며 현장에 남아 있었던 셈이다. 선수로서의 꿈은 접지만, 야구와 완전히 끊어지는 모습은 아니었다. 투구폼 지도에 대해서는 조심스럽게 말한 것도 인상적이었다. 본인이 겪은 어려움을 알기 때문에 쉽게 가르친다고 말하지 않는 태도. 그건 오히려 야구를 진지하게 대했다는 증거처럼 보였다.
2026년 7월 19일, 마지막 경기가 남긴 장면
선성권의 마지막 경기로 알려진 무대는 2026년 7월 19일 고척스카이돔에서 열린 불꽃야구2 화성 코리요와 불꽃 파이터즈 경기였다. 날짜와 장소만 놓고 보면 이벤트 경기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선수 개인에게는 훨씬 복잡한 경기였을 것이다. 꿈을 계속 밀어붙였던 사람에게 마지막 유니폼은 가볍지 않다.
선성권의 은퇴는 프로 입성 실패의 기록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야구판 바깥에서 출발한 선수가 어디까지 도달할 수 있는지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1군 스타의 은퇴처럼 화려한 통산 기록은 없다. 대신 팬들이 기억하는 건 과정이다. 큰 체격의 투수가 마운드에 올라와 공 하나에 온몸을 싣던 장면, 제구가 흔들려도 다시 공을 잡던 표정, 그리고 후회는 없을 것 같다고 말한 태도다.
나는 이런 은퇴가 스포츠를 더 입체적으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승자와 스타만 남는 판이라면 기록은 너무 납작해진다. 선성권은 프로 꿈에 마침표를 찍었지만, 그 과정에서 남긴 숫자와 장면은 꽤 오래 회자될 만하다. 야구는 결국 성공한 선수들의 연표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닿지 못한 꿈까지 같이 쌓여야, 팬들이 보는 경기의 온도가 깊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