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도로공사가 박정아를 데려왔더니, 최하위 팀이 우승팀으로 바뀐 진짜 이유

얼마 전 2017-2018 여자부 챔피언결정전 장면을 다시 봤는데, 박정아가 친정 IBK기업은행 코트에서 때린 공은 그냥 득점 하나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때의 한국도로공사 박정아 영입 이유는 시간이 지나고 보니 더 또렷합니다. 도로공사는 좋은 선수를 데려온 게 아니라, 팀의 공격 구조를 통째로 바꾸는 선택을 했던 셈이었거든요.
최하위 팀에 가장 급했던 건 국내 날개였다
2016-2017시즌 한국도로공사는 여자부 6위였습니다. 순위표 맨 아래에 있던 팀이 갑자기 우승을 말하려면, 분위기 전환만으로는 부족합니다. 확실한 득점 루트가 필요했고, 특히 외국인 선수에게만 몰리지 않는 국내 공격수가 절실했습니다.
배구에서 외국인 공격수 한 명에게만 기대는 팀은 시즌 중반 이후 상대에게 읽히기 쉽습니다. 세터의 선택지는 줄고, 상대 블로커는 높은 공의 방향을 대충 예측할 수 있죠. 도로공사는 라이트 이바나의 반대편에서 오픈, 퀵오픈, 어려운 하이볼까지 처리할 국내 윙이 필요했습니다. 그 자리에 박정아가 맞아떨어졌습니다.
- FA 당시 박정아는 24세로 전성기 진입 구간에 있었습니다.
- 2016-2017 정규리그에서 29경기 460득점, 공격성공률 37.94%를 기록했습니다.
- 국내 선수 기준으로 득점과 공격 효율을 동시에 기대할 수 있는 희소한 아웃사이드히터였습니다.
- IBK기업은행에서 여러 차례 우승을 경험해 큰 경기의 압박을 알고 있었습니다.
도로공사가 계약 기간 3년, 연봉 2억5000만원 조건으로 움직인 건 당시 시장에서 꽤 분명한 베팅이었습니다. 그런데 단순히 큰돈을 쓴 장면으로만 보면 아쉽습니다. 박정아는 한 포지션을 채우는 카드가 아니라, 팀 전체의 득점 지도를 넓히는 카드였으니까요.
박정아는 득점만 올리는 선수가 아니었다
박정아의 장점은 키 큰 공격수라는 말로 끝나지 않습니다. 187cm 신장, 레프트와 라이트를 모두 경험한 포지션 유연성, 대표팀과 챔피언결정전을 거친 무대 경험이 같이 붙어 있었습니다. 사실 이런 선수는 FA 시장에 자주 나오지 않습니다.
숫자로 보인 첫 번째 이유
박정아는 IBK기업은행 시절 김희진, 외국인 선수와 함께 삼각 편대의 한 축으로 뛰었습니다. 그 안에서 이미 우승 팀의 공격 분배, 세트 후반의 볼 처리, 상대 블로킹을 흔드는 움직임을 배웠습니다. 도로공사 입장에서는 당장 득점도 필요했지만, 이기는 팀의 습관을 가진 선수가 더 필요했을 겁니다.
물론 약점도 있었습니다. 박정아가 리시브까지 완벽하게 떠안는 유형은 아니었고, 경기별 기복 얘기도 따라다녔습니다. 근데 도로공사는 그 약점을 줄일 수 있는 틀이 있었습니다. 문정원과 임명옥의 후위 안정감, 이효희의 노련한 배분, 정대영과 배유나가 버티는 중앙이 박정아를 공격 쪽으로 더 강하게 밀어줄 수 있었죠.
이바나와 박정아, 쌍포 구상이 이미 깔려 있었다
도로공사는 2017 외국인 선수 드래프트에서 이바나를 품었습니다. 여기에 박정아까지 더해지면 그림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상대가 이바나 쪽 블로킹을 두껍게 잡으면 박정아에게 공간이 생기고, 박정아가 살아나면 다시 이바나의 길이 열립니다. 배구에서 이건 꽤 무서운 순환입니다.
특히 여자부에서는 국내 윙 공격수가 세트 후반에 자기 공을 책임질 수 있느냐가 순위 싸움의 체감 온도를 바꿉니다. 20점 이후에는 패턴보다 배짱이 먼저 보일 때가 많습니다. 예쁜 세트플레이가 막히는 순간, 결국 높은 공 하나를 누가 때리느냐로 승부가 갈리거든요.
- 높은 볼 처리: 흔들린 리시브 뒤에도 공격 시도를 이어갈 수 있었습니다.
- 블로킹 분산: 이바나에게 몰리는 부담을 줄였습니다.
- 세트 후반 선택지: 듀스 상황에서 국내 공격 카드가 생겼습니다.
- 라인업 균형: 수비형 자원과 공격형 자원의 역할 구분이 선명해졌습니다.
솔직히 이 정도면 영입 이유는 꽤 현실적입니다. 스타성을 보고 데려온 게 아니라, 최하위 팀이 우승 후보로 올라서기 위해 꼭 필요한 기능을 산 겁니다.
우승 경험은 눈에 잘 안 보여도 값이 컸다
젊은데 우승 경험이 많은 선수는 이상한 조합입니다. 보통 경험은 나이와 같이 오는데, 박정아는 신생팀 IBK기업은행 시절부터 우승 압박을 몸으로 겪었습니다. 정규리그와 챔피언결정전에서 이겨본 선수가 하위권 팀 라커룸에 들어간다는 건, 숫자로 바로 표시되지는 않아도 팀 분위기를 바꾸는 일입니다.
도로공사에는 이미 베테랑들이 있었습니다. 이효희, 정대영 같은 선수들은 경기 운영과 중심을 잡아줄 수 있었죠. 여기에 박정아처럼 아직 젊고 공격 책임을 질 수 있는 선수가 들어오면, 베테랑의 안정감과 전성기 공격수의 폭발력이 같이 생깁니다. 그 조합이 도로공사 영입 전략의 진짜 맛이었습니다.
첫 시즌 숫자가 판단을 보여줬다
2017-2018시즌 박정아는 정규리그에서 478득점, 공격성공률 35.35%를 기록했습니다. 득점 8위, 공격 종합 9위였습니다. 숫자만 보면 압도적 1위는 아니지만, 도로공사에는 그보다 중요한 변화가 있었습니다. 공격이 한쪽으로만 흐르지 않았고, 상대가 준비해야 할 길이 많아졌습니다.
챔피언결정전에서는 더 확실했습니다. 박정아는 3경기에서 70점, 공격성공률 48.53%를 찍었습니다. MVP 투표에서도 29표 중 26표를 받았습니다. 이 정도면 단순한 활약이 아니라 시리즈의 흐름을 잡아챈 수준입니다. 도로공사는 정규리그 1위에 이어 창단 첫 통합우승까지 가져갔고, 박정아 영입은 바로 그 중심에 있었습니다.
나중에 2022-2023시즌 역전 우승까지 떠올리면, 이 선택은 더 오래 남습니다. 한국도로공사가 박정아를 데려온 이유는 공격수 한 명 보강이 아니라 우승 가능한 경기 방식을 만들기 위해서였습니다. 팬 입장에서는 이런 영입이 제일 흥미롭습니다. 선수 한 명의 이동이 순위표만 바꾸는 게 아니라, 팀이 배구를 푸는 방식까지 바꿔버린 사례니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