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훈 위원 향년 86세 별세 소식에 기록을 다시 읽었다

며칠 전 오래된 일본 프로야구 기록표를 넘기다가 장훈 위원의 이름 앞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3085안타. 워낙 익숙한 숫자인데, 향년 86세로 별세했다는 소식을 접하고 다시 보니 다르게 읽혔습니다. 한 시대의 최다 안타 기록이면서, 23시즌 동안 타석에 서고 또 서서 쌓은 숫자였으니까요.
9월 9일 멈춘 야구인의 시간
일본 프로야구 명구회는 장훈 위원이 2026년 9월 9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고 발표했습니다. 향년 86세였습니다. 현역 시절 일본에서는 하리모토 이사오라는 이름으로 뛰었고, 은퇴 뒤에는 야구 해설위원과 평론가로 오래 활동했습니다. 경기 장면을 두고 거침없이 의견을 내던 모습 때문에, 그의 이름을 기록보다 방송에서 먼저 접한 팬도 있을 겁니다.
하지만 선수 장훈의 출발점으로 돌아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1959년 도에이 플라이어스에 입단해 그해 신인왕을 받았고, 팀 이름이 바뀐 뒤에도 같은 구단에서 중심 타자로 뛰었습니다. 이후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롯데 오리온스를 거쳐 1981년 은퇴했습니다. 일본 야구전당박물관에 남은 이력에는 1990년 야구 전당 헌액도 기록돼 있습니다.
3085안타를 평균으로 나눠 보니
일본야구기구의 통산 기록은 2752경기, 9666타수, 3085안타, 타율 0.319입니다. 23시즌으로 단순히 나누면 한 시즌에 약 134안타입니다. 물론 실제 시즌마다 경기 수와 출전 기회는 달랐습니다. 그래도 이 평균은 긴 선수 생활의 무게를 짐작하게 합니다. 몇 해 반짝 잘 쳐서는 닿기 어려운 숫자죠. 3085안타는 지금도 일본 프로야구의 통산 최다 기록입니다.
안타만 많은 타자도 아니었습니다. 통산 504홈런과 1676타점, 319도루를 남겼습니다. 타격왕은 일곱 차례, 출루율 1위는 아홉 차례였습니다. 공을 맞히는 능력에 장타와 주루까지 갖췄다는 뜻입니다. ‘안타 제조기’라는 별명만 들으면 단타를 꾸준히 쳐낸 타자를 떠올리기 쉬운데, 홈런 500개를 넘긴 기록은 그 인상을 바꿉니다.
연도별 기록을 보면 흐름이 더 선명합니다. 1970년에는 125경기에서 176안타를 치며 타율 0.383, 34홈런, 100타점을 기록했습니다. 안타를 많이 치면서도 공을 멀리 보낸 시즌이었습니다. 요미우리로 옮긴 1976년에는 130경기에서 182안타, 타율 0.355를 남겼습니다. 팀을 옮긴 뒤에도 타격 생산력을 이어 갔다는 점이 눈에 들어옵니다. 통산 성적의 높은 평균은 이런 강한 시즌들이 여러 차례 이어진 결과였습니다.
3000번째 안타가 홈런이었다
1980년 5월 28일, 롯데 소속이던 장훈은 한큐 브레이브스전에서 일본 프로야구 최초의 통산 3000안타를 달성했습니다. 그 안타는 홈런이었습니다. 3000이라는 둥근 숫자에 도착하는 순간에도 그의 타격이 안타와 장타를 함께 품고 있었다는 점이 묘하게 어울립니다.
다만 그때는 선수 생활의 마지막 구간이었습니다. 일본야구기구 기록을 보면 요미우리에서 보낸 1979년은 60안타와 타율 0.263, 롯데로 옮긴 1980년은 89안타와 타율 0.261이었습니다. 전성기의 페이스와는 차이가 났습니다. 그래서 3000안타에 닿기까지는 절정의 재능만큼 오랜 출전과 버티는 시간이 필요했을 겁니다. 이듬해 35안타를 더한 뒤 그의 통산 안타는 3085개에서 멈췄습니다.
기록표 밖에 남는 장훈의 이름
장훈은 히로시마에서 태어난 재일동포 2세였습니다. 어린 시절 오른손에 입은 큰 화상, 원폭을 겪은 기억, 재일동포로 살아온 경험은 그의 선수 생활을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어려움을 이겨 냈다는 한 문장에 모든 것을 담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타석에서 남긴 성적은 치열한 경쟁 속에서 실제로 해낸 일이고, 그가 살아온 배경은 그 숫자를 읽을 때 함께 생각해야 할 맥락입니다.
은퇴 뒤의 직설적인 해설에는 호불호가 있었습니다. 그 평가와 별개로, 선수 장훈의 기록은 분명합니다. 타율 0.319와 504홈런도 놀랍지만 제게 오래 남는 숫자는 역시 3085입니다. 한두 장면이 아니라 수천 번의 타석과 스물세 시즌의 시간이 들어 있는 기록이라서요. 다음에 오래된 타격 순위표를 펼치면, 맨 위의 이름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될 것 같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