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시리즈 연장 12회가 보여준 승부의 다른 얼굴

얼마 전 한국시리즈 2차전을 보다가 10회에 잠깐 자리에서 일어났는데, 돌아오니 경기는 다시 동점이었다. 연장전은 점수판의 숫자보다 그 점수가 만들어진 과정을 볼 때 훨씬 재미있다. 한 번 앞서간 팀이 왜 승리를 놓쳤는지, 남겨 둔 투수와 대타가 몇 명인지에 따라 같은 1점의 무게도 달라진다.
2026년 2차전, 10회에 끝날 뻔한 경기가 12회까지 갔다
2026년 11월 4일 KT와 삼성의 한국시리즈 2차전은 삼성의 3대 2 승리로 끝났다. 1차전에서 7대 8로 졌던 삼성이 시리즈 전적을 1승 1패로 맞춘 경기다. 그런데 10회초만 보면 삼성이 더 일찍 승리를 가져갈 듯했다. 김지찬이 몸에 맞는 공으로 나간 뒤 희생번트로 2루에 갔고, 디아즈의 적시타가 나오며 삼성이 2대 1로 앞섰다.
KT의 10회말은 연장 승부가 얼마나 쉽게 흔들리는지 보여줬다. 안타 두 개와 삼성의 수비 실책으로 만루가 됐고, 김현수가 밀어내기 볼넷을 골라 2대 2를 만들었다. 하지만 이어진 만루 기회에서는 득점하지 못했다. 동점을 만든 KT도 아쉬움이 남고, 리드를 지키지 못한 삼성도 한숨이 나올 만한 이닝이었다.
12회초에는 수비가 다시 흐름을 갈랐다. 삼성이 주자 1·2루 기회를 만든 뒤 이재현의 병살성 땅볼이 나왔지만, KT 2루수의 송구 실책이 겹쳤다. 그사이 디아즈가 홈을 밟아 결승점을 올렸다. 삼성은 12회말을 무실점으로 막았다. 기록지에는 3대 2 승리 한 줄이 남지만, 실제 승부는 10회말 만루와 12회초 송구에서 두 번 크게 기울었다.
한국시리즈 연장은 몇 회까지 갈까
KBO가 발표한 2026년 포스트시즌 운영 방식에 따르면 연장은 최대 15회까지다. 15회가 끝나도 동점이면 무승부로 기록한다. 한국시리즈는 7전 4선승제이므로 무승부 경기는 어느 팀의 승수에도 보태지지 않는다. 무승부가 나오면 정해진 최종전 이후 해당 경기가 열렸던 구장에서 추가 경기를 치른다. 한 시리즈에서 무승부가 두 경기 이상 나오면 추가 경기 사이에 하루 이동일을 둔다.
정규시즌과 같은 감각으로 연장을 예상하면 헷갈릴 수 있다. KBO는 2025년부터 정규시즌 연장 한도를 기존 12회에서 11회로 줄였지만, 2026년 포스트시즌은 15회까지 진행한다. 9회 동점 이후에도 최대 여섯 이닝을 더 준비해야 하는 셈이다. 그래서 감독은 10회에 당장 점수를 낼 기회와, 경기가 더 길어졌을 때 쓸 선수 사이에서 계속 판단해야 한다.
무승부도 다음 경기의 전력표를 바꾼다
2006년 삼성과 한화의 한국시리즈 5차전은 그 부담이 선명했던 경기다. 두 팀은 연장 15회까지 1대 1로 맞서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 경기 시간은 5시간 15분이었다. 당시 삼성은 9명, 한화는 5명의 투수를 투입했다. 승패가 나지 않았어도 그날 던진 공과 치른 타석은 사라지지 않는다.
실제로 삼성은 그해 3·4·5차전을 내리 연장전으로 치렀다. 3차전은 12회, 4차전은 10회에 삼성이 이겼고 5차전은 비겼다. KBO의 역대 한국시리즈 기록에는 삼성의 최종 전적이 4승 1무 1패로 남아 있다. 5차전의 무승부만 떼어 보면 제자리걸음 같지만, 긴 승부 뒤에 양 팀이 어떤 투수진으로 6차전을 맞았는지까지 봐야 시리즈의 흐름이 읽힌다.
2004년 현대와 삼성의 4차전은 또 다른 장면을 남겼다. 삼성 선발 배영수는 10이닝 동안 안타를 하나도 내주지 않고 볼넷 1개와 탈삼진 11개를 기록했다. 그런데 타선도 점수를 내지 못해 경기는 당시 적용된 연장 12회 한도에서 0대 0 무승부로 끝났다. 압도적인 투구가 곧바로 팀 승리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이보다 선명하게 보여주는 숫자도 드물다. 그해 현대는 무승부 세 경기가 포함된 4승 3무 2패로 우승했다.
연장전 기록에서 먼저 보게 되는 것들
연장 경기를 다시 볼 때 나는 최종 점수보다 세 장면을 먼저 찾는다. 9회 이후 주자가 득점권에 갔을 때 어떤 타구가 나왔는지, 동점 이후 남은 투수는 누구였는지, 그리고 실책이나 볼넷이 다음 타석의 부담을 어떻게 키웠는지다. 2026년 2차전만 해도 10회말의 밀어내기 볼넷과 12회초의 송구 실책을 빼면 3대 2라는 점수가 설명되지 않는다.
물론 실책 하나로 긴 경기를 모두 설명할 수는 없다. KT는 10회말 만루에서 역전할 기회가 있었고, 삼성은 12회말까지 리드를 지켜야 했다. 연장전의 묘미는 바로 여기에 있다. 한 장면이 승부를 가르더라도, 그 장면에 이르기까지 쌓인 선택과 놓친 기회가 기록 곳곳에 남는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연장이 시작되면 시계보다 기록지를 더 자주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