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다인 이적 기로를 지나고 보니, 현대건설이 지킨 건 세터 한 명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여자배구 FA 시장 흐름을 다시 보는데, 현대건설 김다인 이름 앞에서 시선이 오래 멈췄습니다. 세터는 기록지만 보면 화려한 포지션이 아닐 때가 많지만, 경기를 오래 보다 보면 압니다. 팀의 속도, 공격수의 표정, 랠리 후반의 선택까지 결국 세터 손끝에서 갈리는 장면이 너무 많거든요.
김다인은 2025-2026시즌이 끝난 뒤 첫 FA 자격을 얻으면서 말 그대로 이적 기로에 섰습니다. 관심은 당연했습니다. 현대건설의 주전 세터이자 국가대표 세터, 그리고 리그에서 이미 검증된 경기 운영자였으니까요. 실제로 IBK기업은행의 강한 관심도 있었지만, 김다인의 선택은 잔류였습니다. 계약 조건은 3년, 보수 총액 5억4000만 원. 연봉 4억2000만 원에 옵션 1억2000만 원으로 여자부 개인 상한 최고액입니다.
숫자로 보면 왜 최대어였는지 바로 보인다
김다인의 2025-2026시즌 기록은 꽤 선명합니다. 정규리그 34경기, 135세트에 출전했고 세트 성공은 세트당 10.96개였습니다. 이 부문 리그 2위. 세터 기록은 공격수의 득점처럼 직관적으로 꽂히지는 않지만, 이 숫자는 팀 공격이 얼마나 안정적으로 굴러갔는지를 보여주는 지표입니다.
현대건설은 그 시즌 정규리그 2위로 봄배구에 올랐습니다. 단순히 좋은 공격수가 있어서 가능한 흐름은 아니었습니다. 양효진, 모마, 정지윤 등 각기 다른 타점과 리듬을 가진 공격 자원을 한 코트 안에서 굴리려면 세터가 계속 선택지를 바꿔줘야 합니다. 김다인의 장점은 여기서 나옵니다. 빠르게 몰아칠 때와 높게 버틸 때를 구분하고, 흔들린 리시브 뒤에도 공격수에게 최소한의 승부 공간을 만들어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 2025-2026시즌 정규리그 세트당 세트 성공 10.96개
- 세트 부문 리그 2위
- 정규리그 34경기, 135세트 출전
- 2025-2026 V리그 베스트7 세터 선정
- FA 계약 보수 총액 5억4000만 원
이적 기로가 진짜 뜨거웠던 이유
사실 세터 FA는 팀 하나의 문제가 아닙니다. 리그 전체 판도가 움직입니다. 공격수 영입은 득점 루트를 늘리는 의미가 크지만, 세터 이동은 팀의 언어를 바꾸는 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김다인을 두고 여러 팀이 계산기를 두드린 건 자연스러웠습니다.
특히 김다인은 1998년생입니다. 이미 리그 정상급 경험을 쌓았는데, 나이로 보면 아직 전성기 중반부를 더 가져갈 수 있습니다. 2017-2018시즌 신인드래프트 2라운드 4순위로 현대건설에 들어왔고, 초반에는 출전 기회가 넉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주전으로 올라선 뒤에는 팀 성적과 개인 평가가 같이 뛰었습니다. 베스트7 세터 수상 이력도 한 번 반짝한 결과가 아니라 꾸준함의 증거에 가깝습니다.
근데 이 지점이 흥미롭습니다. 시장 가치는 이미 최고액으로 확인됐지만, 김다인의 선택은 단순히 돈만의 문제로 보이지 않았습니다. 상한제가 있는 상황에서 최고 대우는 여러 팀이 맞춰줄 수 있었습니다. 결국 남은 건 팀의 비전, 익숙한 공격수들과의 호흡, 그리고 현대건설 안에서 본인이 더 만들 수 있는 장면에 대한 판단이었겠죠.
현대건설 입장에선 잔류 이상의 의미가 있다
현대건설이 김다인을 잡은 건 전력 유지가 아니라 전술의 중심을 지킨 일입니다. 세터가 바뀌면 가장 먼저 흔들리는 건 미들 활용입니다. 현대건설은 전통적으로 중앙 공격의 비중과 효율이 중요한 팀이었습니다. 빠른 속공, 이동 공격, 상대 블로커를 붙잡아두는 페이크 동작까지 세터와 미들블로커 사이의 시간이 아주 촘촘해야 합니다.
양효진 은퇴 이후 현대건설은 중앙과 날개의 균형을 새로 맞춰야 하는 구간에 들어섰습니다. 이런 시기에 세터까지 바뀌었다면 변화의 폭이 너무 컸을 겁니다. 김다인의 잔류는 새 시즌 전술 실험의 바닥을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배유나, 이한비 같은 새 얼굴이 합류한 흐름까지 고려하면, 익숙한 조율자가 있다는 건 감독 입장에서도 꽤 큰 보험입니다.
기록 뒤에 숨어 있는 세터의 가치
세트 성공 10.96개라는 숫자는 좋습니다. 그런데 김다인의 진짜 가치는 그 숫자 바깥에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리시브가 완벽하지 않은 공에서 하이볼을 누구에게 줄지, 상대 블로킹이 중앙을 의식하는 순간 날개를 어떻게 열지, 듀스 이후 첫 공을 어느 공격수에게 맡길지 같은 선택은 기록표에 전부 남지 않습니다.
솔직히 세터 평가는 그래서 어렵습니다. 공격수처럼 성공률 하나로 판단하기 힘들고, 팀 리시브와 공격수 컨디션의 영향도 큽니다. 다만 좋은 세터는 흔들리는 경기에서 티가 납니다. 볼이 조금 낮아도 공격수가 때릴 수 있게 만들고, 범실이 나온 뒤 다음 공을 다시 같은 선수에게 줄 수 있는 배짱이 있습니다. 김다인이 현대건설에서 신뢰를 받은 이유도 그쪽에 가깝습니다.
이 선택이 다음 시즌에 던지는 질문
김다인의 잔류로 현대건설은 가장 큰 불확실성 하나를 지웠습니다. 하지만 부담도 같이 커졌습니다. 최고 대우를 받은 세터에게 기대되는 건 단순한 안정감이 아니라, 팀의 변화를 끌고 가는 힘입니다. 특히 새 시즌에는 중앙 조합 변화, 날개 공격 분배, 외국인 선수와의 호흡이 모두 다시 맞춰져야 합니다.
팬 입장에서 보고 싶은 장면은 분명합니다. 김다인이 안정적인 토스만 하는 세터에 머물지 않고, 상대 블로킹을 계속 속이고 공격수들의 장점을 더 크게 보이게 만드는 경기 운영을 보여주는 겁니다. 현대건설이 우승권에서 다시 버티려면 김다인의 손끝이 예전보다 더 바빠질 가능성이 큽니다.
이적 기로를 지나 잔류라는 선택을 한 김다인은 이제 시장의 평가를 이미 받았습니다. 남은 건 코트 위에서 그 평가를 매 경기 다시 증명하는 일입니다. 세터 한 명의 선택이 팀의 계절을 얼마나 바꿀 수 있는지, 현대건설의 다음 시즌을 볼 때 가장 먼저 체크하고 싶은 지점도 바로 거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