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연이 기업은행 유니폼을 입게 된 진짜 이유, 기록으로 따라가 봤더니

얼마 전 V리그 미들블로커 기록을 다시 넘겨보다가 김채연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신인왕으로 출발했던 선수가 두 시즌 가까이 부상에 묶였고, 흥국생명을 떠나 IBK기업은행으로 가는 흐름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그냥 이적 한 줄로 넘기기엔 숫자와 상황이 꽤 빽빽하다.
김채연의 기업은행행은 ‘선택’보다 ‘필요’에 가까웠다
먼저 짚고 가야 할 부분이 있다. 김채연이 자유계약선수처럼 여러 팀을 놓고 기업은행을 골랐다기보다는, 2024년 6월 흥국생명과 IBK기업은행의 트레이드로 팀을 옮긴 케이스다. 기업은행은 리베로 신연경을 내주고 미들블로커 김채연을 데려왔다. 그래서 ‘김채연 기업은행 선택 이유’라는 키워드는 정확히 말하면 김채연 개인의 선택만이 아니라, 기업은행이 왜 김채연을 필요로 했고 김채연에게 왜 기업은행이 새 출발의 무대가 됐는지로 보는 편이 더 맞다.
기업은행 입장에서 가장 큰 배경은 중앙 보강이었다. 2023-24시즌 최정민이 리그 정상급 미들블로커로 올라섰지만, 한 명만으로 긴 시즌을 버티기는 어렵다. 이주아를 FA로 영입한 뒤 김채연까지 더하면서 기업은행은 중앙 높이와 로테이션 폭을 동시에 챙겼다. 쉽게 말해 김채연은 ‘즉시 주전’만을 보고 데려온 자원이 아니라, 건강만 회복하면 경기 흐름을 바꿀 수 있는 미들블로커 카드였다.
신인왕 김채연, 기록은 이미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다
김채연의 출발은 꽤 화려했다. 2017-18시즌 신인 드래프트 1라운드 5순위로 흥국생명에 입단했고, 데뷔 시즌 28경기 109득점, 세트당 블로킹 0.430개를 기록하며 신인상을 받았다. 미들블로커에게 신인 시즌부터 중요한 건 단순 득점보다 코트 안에서 버틸 수 있느냐다. 그 기준에서 김채연은 높이, 타이밍, 공격 가담 모두에서 눈에 띄는 선수였다.
더 인상적인 시즌은 2021-22시즌이다. 33경기 149득점, 세트당 블로킹 0.409개. 이 숫자는 김채연이 단지 유망주였던 게 아니라 실제 전력으로 계산 가능한 선수였다는 뜻이다. 미들블로커는 공격 점유율이 윙스파이커처럼 높지 않다. 그런데도 꾸준히 100점대 중후반 득점과 0.4개 안팎의 블로킹을 찍었다면, 상대 세터가 중앙을 의식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고 봐야 한다.
부상이 끊어놓은 두 시즌
그런데 흐름이 갑자기 꺾였다. 2022-23시즌에는 오른쪽 정강이 피로골절로 7경기 8세트 출전에 그쳤고, 2023-24시즌에는 오른쪽 팔꿈치 내측 인대 파열로 4경기 14세트만 뛰었다. 2년 합쳐도 출전 세트가 많지 않았다. 배구 팬 입장에서는 이름은 익숙한데 코트에서 자주 보이지 않는, 딱 그런 시간이 길었다.
선수에게는 더 잔인한 구간이다. 미들블로커는 점프와 착지, 블로킹 때 팔 사용이 반복된다. 정강이와 팔꿈치 부상은 그냥 참고 뛰는 문제가 아니다. 타이밍이 조금만 흔들려도 블로킹 위치가 늦고, 공격 팔 스윙이 불안하면 속공의 위력도 떨어진다. 김채연이 재활과 복귀를 이야기할 때 ‘건강하게 한 시즌을 채우고 싶다’는 목표를 앞세운 것도 그래서 자연스럽다.
기업은행이 김채연에게 매력적인 무대였던 이유
김채연에게 기업은행은 낯선 팀이지만, 동시에 복귀 플랜을 다시 짜기 좋은 팀이었다. 흥국생명에서는 오랜 시간 한 팀에 있었고, 그만큼 익숙함도 컸다. 하지만 부상 이후에는 익숙함보다 출전 기회, 역할, 몸 상태 관리가 더 중요해진다. 기업은행은 중앙 자원을 적극적으로 모으는 팀이었고, 김채연은 그 안에서 부담을 나눠 가진 채 경쟁할 수 있었다.
- 최정민과 이주아가 있는 중앙진에서 즉시 모든 부담을 떠안지 않아도 된다.
- 김호철 감독 체제에서 블로킹과 중앙 공격 활용도가 분명한 편이다.
- 부상 복귀 선수에게 필요한 단계적 출전과 로테이션 운용이 가능하다.
- FA 자격을 다시 바라보려면 건강한 시즌 누적 출전이 절실했다.
사실 이 지점이 중요하다. 김채연에게 기업은행은 단순히 새 유니폼을 입는 변화가 아니라, 끊긴 커리어 그래프를 다시 잇는 팀이었다. 신인왕 출신이라는 과거의 이름값만으로는 부족하다. 몸이 돌아오고, 블로킹 타이밍이 돌아오고, 세터와 속공 호흡이 맞아야 한다. 기업은행은 그 과정을 팀 전력 강화라는 목적과 함께 기다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숫자 뒤에 있는 진짜 관전 포인트
김채연을 볼 때 단순 득점만 보면 재미가 반쯤 줄어든다. 미들블로커는 15득점, 20득점으로 폭발하는 날보다 상대 공격 루트를 막고 윙 공격수의 부담을 줄이는 날이 더 많다. 그래서 봐야 할 숫자는 블로킹 성공만이 아니다. 유효 블로킹, 속공 시도 수, 이동 공격 참여, 서브 순서에서의 흐름까지 같이 봐야 김채연의 가치가 보인다.
기업은행이 김채연을 데려온 이유도 여기에 있다. 높이는 단순히 키의 문제가 아니다. 중앙에 믿을 만한 선수가 한 명 더 있으면 상대 세터는 선택지를 늦게 가져간다. 그 찰나가 수비 위치를 바꾸고, 랠리의 방향을 바꾼다. 김채연이 2021-22시즌 수준의 몸 상태와 감각을 회복한다면 기업은행은 중앙에서 훨씬 다양한 조합을 쓸 수 있다.
팬 입장에서 기대할 만한 장면
솔직히 김채연의 기업은행 생활을 가장 흥미롭게 만드는 건 ‘대단한 부활 서사’ 같은 표현보다 현실적인 복귀 과정이다. 컵대회나 초반 라운드에서 짧게 들어와 블로킹 한두 개로 분위기를 바꾸는 장면, 세터와 속공 타이밍을 맞춰가며 출전 시간이 조금씩 늘어나는 흐름, 그런 장면들이 쌓이면 기록표가 다시 말하기 시작한다.
김채연의 기업은행행은 화려한 선택이라기보다 서로 필요한 타이밍이 맞아떨어진 이동에 가깝다. 기업은행은 중앙을 두껍게 만들고 싶었고, 김채연은 다시 코트 위에서 자신의 시즌을 온전히 채우고 싶었다. 그래서 이 이적은 승패표보다 출전 세트, 블로킹 감각, 몸 상태의 지속성으로 읽을 때 더 재미있다. 팬으로서는 김채연이 다시 ‘계산되는 미들블로커’가 되는 과정을 보는 것만으로도 꽤 긴 이야기를 따라가는 기분이 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