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한비 2.6억, 배유나 3억 내려앉은 숫자를 따라가봤더니 현대건설의 계산이 보였다

얼마 전 여자배구 FA 계약표를 훑다가 숫자 하나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이한비 1억 원, 배유나 2억5천만 원. 이름값만 놓고 보면 너무 낮아 보였고, 전 시즌 보수와 비교하면 더 눈에 띄었습니다. 이한비는 3억6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2억6천만 원이 줄었고, 배유나는 5억5천만 원에서 2억5천만 원으로 3억 원이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이 숫자는 단순한 ‘몸값 하락’으로만 읽기엔 꽤 복잡합니다.
삭감보다 먼저 봐야 할 건 이동 방식
두 선수 모두 일반적인 FA 이적이라기보다 사인앤드트레이드라는 흐름 위에 있었습니다. 이한비는 페퍼저축은행과 연봉 1억 원에 계약한 뒤 현대건설로 향했고, 배유나는 한국도로공사와 총액 2억5천만 원에 계약한 뒤 현대건설 유니폼을 입게 됐습니다. 한국배구연맹 FA 공시와 주요 통신사 보도를 기준으로 보면, 숫자는 꽤 명확합니다.
- 이한비: 2025-26시즌 보수 3억6천만 원에서 2026-27시즌 연봉 1억 원
- 배유나: 2025-26시즌 보수 5억5천만 원에서 2026-27시즌 총액 2억5천만 원
- 김다인: 현대건설 잔류, 총액 5억4천만 원으로 개인 상한액 수준
- 김연견: 현대건설 잔류, 총액 3억2천만 원
근데 여기서 중요한 건 ‘현대건설이 두 선수의 연봉을 일방적으로 깎았다’는 그림이 아닙니다. FA 시장 구조, 원소속 구단 상황, 보상 규정, 그리고 선수 본인의 출전 기회 계산이 한꺼번에 얽힌 결과에 가깝습니다. 그래서 이 계약은 감정적으로 보면 충격이고, 전력 구성 관점에서 보면 꽤 현실적인 선택입니다.
이한비 1억 원, 이 숫자가 이상하게 큰 이유
이한비의 1억 원은 절대액으로만 보면 V리그 주전급 아웃사이드 히터의 몸값과는 거리가 있습니다. 2023-24시즌만 해도 이한비는 보수 상승폭이 큰 선수로 언급될 만큼 페퍼저축은행 공격의 얼굴이었습니다. 페퍼 창단 이후 팀이 흔들릴 때도 공을 많이 때렸고, 해결해야 하는 랠리에서 책임을 떠안는 장면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배구에서 공격수의 가치는 단순 득점만으로 굳지 않습니다. 리시브 점유율, 범실, 외국인 선수와의 역할 분담, 세터와의 호흡, 팀 성적이 같이 붙습니다. 페퍼저축은행이 박정아 중심으로 팀을 설계하고 젊은 자원을 함께 키우는 흐름으로 가면서 이한비의 위치는 예전만큼 선명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3억6천만 원에서 1억 원으로 내려간 숫자는 선수 가치가 완전히 사라졌다는 뜻이라기보다, 시장에서 새 역할을 다시 받아든 장면으로 읽는 편이 맞습니다.
현대건설 입장에선 보험이 아니라 즉시 전력
현대건설은 늘 우승권의 문법으로 움직이는 팀입니다. 주전 한두 명이 빠졌을 때 버티는 힘, 긴 시즌 중 공격 루트가 막힐 때 바꿔 넣을 카드, 포스트시즌에서 상대 블로킹을 흔드는 한 방이 중요합니다. 이한비가 전성기 볼륨을 그대로 가져올지는 봐야 하지만, 1억 원에 경험 있는 아웃사이드 히터를 확보했다는 건 샐러리캡 운영상 상당히 매력적인 선택입니다.
솔직히 이 계약은 ‘싸게 데려왔다’는 표현만으로는 조금 부족합니다. 이한비에게도 현대건설은 다시 증명할 수 있는 무대입니다. 공을 덜 때리더라도 더 좋은 세팅, 더 안정된 수비 라인, 더 높은 순위 압박 속에서 자기 장점을 꺼낼 수 있습니다. 공격 성공률이 크게 튀지 않더라도 중요한 세트 중반에 2~3점을 끊어주는 역할이면 값어치는 달라집니다.
배유나 2억5천만 원, 나이보다 기술을 산 계약
배유나의 3억 원 삭감은 더 크게 보입니다. 5억5천만 원급 베테랑 미들블로커가 2억5천만 원으로 내려왔으니까요. 하지만 배유나는 원래 단순히 높이만으로 평가받는 선수가 아닙니다. 속공 타이밍, 이동 공격, 블로킹 위치 선정, 상대 세터의 습관을 읽는 감각까지 포함해야 합니다. 그래서 ‘나이가 있다’는 말만으로 계산이 끝나지 않습니다.
물론 리스크는 있습니다. 베테랑 미들블로커에게 가장 무서운 건 한 경기 폭발력보다 회복력입니다. 정규리그는 길고, 중앙 포지션은 점프와 착지가 반복됩니다. 어깨와 무릎 상태, 연전에서의 컨디션 관리, 젊은 미들블로커와의 출전 분배가 실제 성패를 가를 겁니다. 현대건설이 배유나를 매 경기 30점짜리 선수처럼 쓰려 한다면 계산이 어긋날 수 있습니다.
반대로 출전 시간을 정교하게 나누고, 김다인의 빠른 토스 선택과 결합한다면 얘기가 달라집니다. 배유나는 공이 높게만 올라와야 사는 유형이 아닙니다. 짧은 움직임으로 블로커 시선을 흔들고, 한 박자 빠른 중앙 공격으로 상대 수비를 벌리는 쪽에 강점이 있습니다. 현대건설이 원하는 것도 아마 전성기 복제가 아니라, 중요한 순간 중앙의 선택지를 넓히는 쪽일 가능성이 큽니다.
현대건설의 진짜 계산은 샐러리캡에 있다
2026-27시즌 여자부는 개인 보수 상한액이 5억4천만 원으로 줄었습니다. 샐러리캡 21억 원, 옵션캡 6억 원, 승리수당 3억 원 틀은 유지됐지만, 개인이 받을 수 있는 최고액은 예전보다 낮아졌습니다. 이 변화가 시장의 온도를 확 낮췄습니다. 예전처럼 대형 선수 몇 명에게 큰돈을 몰아주는 방식보다, 상한액 선수와 중간 가격대 전력을 어떻게 섞느냐가 더 중요해졌습니다.
현대건설은 김다인을 상한액 수준으로 묶었습니다. 세터는 팀 전술의 심장이고, 특히 현대건설처럼 중앙 활용 비중이 큰 팀에선 더 그렇습니다. 여기에 김연견을 지키고, 이한비와 배유나를 낮아진 가격에 붙인 그림은 꽤 선명합니다. 중심축에는 돈을 쓰고, 경험 많은 보강 자원은 시장 변동을 활용해 데려온 겁니다.
- 김다인에게는 경기 운영의 안정성을 맡겼다
- 김연견에게는 수비와 리시브 라인의 기준점을 맡겼다
- 이한비에게는 공격 교체 카드와 날개 깊이를 기대한다
- 배유나에게는 중앙 경험과 경기 읽는 힘을 기대한다
이 조합이 무조건 성공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숫자만 놓고 보면 현대건설은 스타 이름을 모은 게 아니라, 역할별 가격표를 다시 붙인 쪽에 가깝습니다. 이한비와 배유나의 삭감 폭이 워낙 커서 감정적으로 먼저 보이지만, 팀 구성표에 넣어 보면 왜 이런 선택을 했는지 보입니다.
이 계약을 보는 내 쪽의 관전 포인트
저는 이한비의 첫 번째 체크 포인트를 출전 시간보다 공격 효율로 봅니다. 경기당 득점이 15점까지 올라가지 않아도 됩니다. 대신 교체 투입 뒤 첫 공격 성공률, 리시브가 흔들린 상황에서의 범실 억제, 외국인 선수 후위 때 버티는 득점이 중요합니다. 1억 원 계약 선수에게 기대하는 건 시즌 전체를 떠받치는 에이스 역할이 아니라, 흐름이 꺾이는 지점에서 팀을 살리는 짧고 굵은 영향력입니다.
배유나는 블로킹 숫자만 보면 놓치는 장면이 많을 겁니다. 유효 블로킹, 상대 공격 코스 제한, 세터가 중앙을 의식하게 만드는 존재감이 더 중요합니다. 특히 김다인과의 호흡이 빨리 맞으면 현대건설은 중앙을 미끼로 날개 공격을 살리는 패턴을 더 자주 쓸 수 있습니다. 배유나의 2억5천만 원은 과거 이름값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지금 당장 필요한 기술 패키지에 대한 가격으로 봐야 합니다.
그래서 이한비 2.6억 삭감, 배유나 3억 삭감이라는 문장은 자극적이지만, 그 안쪽에는 꽤 냉정한 배구의 계산이 들어 있습니다. 두 선수가 예전만큼 많은 공을 때리고 많은 점수를 내야만 성공인 계약은 아닙니다. 현대건설이 우승권 팀답게 긴 시즌을 버틸 수 있는 두께를 얻었는지, 그리고 두 선수가 낮아진 숫자를 경기 안의 영향력으로 다시 바꿔낼 수 있는지. 저는 그 지점이 이번 이적의 진짜 재미라고 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