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아가 다시 김천으로 돌아온 이유, 숫자로 보니 꽤 현실적이었다

얼마 전 박정아의 한국도로공사 복귀 소식을 보고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낭만’보다 ‘계산’이었다. 친정팀 복귀라는 말은 듣기 좋지만, 2026년 봄의 흐름을 따라가면 이 이동은 감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페퍼저축은행의 매각 추진, FA 보상 부담, 박정아의 나이와 기록 하락, 그리고 도로공사의 전력 구멍이 한 번에 맞물렸다.
복귀의 출발점은 페퍼저축은행의 불확실성이었다
박정아는 2023년 챔피언결정전 우승 직후 한국도로공사를 떠나 페퍼저축은행으로 갔다. 당시 보도된 조건은 연간 7억7천500만 원 규모였다. 여자부 최고 대우급 계약이었고, 페퍼 입장에서는 단숨에 팀의 얼굴을 세우려는 선택이었다.
그런데 2025-2026시즌 뒤 상황이 바뀌었다. 페퍼저축은행은 구단 매각 이슈 속에 FA 선수들을 붙잡기 어려운 흐름에 놓였다. 박정아도 FA가 됐지만, 단순히 원하는 팀과 바로 계약하기에는 걸리는 게 많았다. A등급 FA였기 때문에 영입 구단은 큰 보상금을 감수해야 했다. 연봉 기준으로 200% 보상금과 보상선수, 또는 300% 보상금이라는 부담이 붙는다.
이 지점에서 사인 앤드 트레이드가 현실적인 길이 됐다. 보도 기준으로 박정아는 페퍼저축은행과 먼저 낮아진 규모의 계약을 맺고, 이후 현금 트레이드 형태로 한국도로공사 유니폼을 다시 입었다. 감성적인 복귀처럼 보이지만, 구조만 놓고 보면 구단과 선수 모두에게 손실을 줄이는 방식이었다.
박정아에게 도로공사는 ‘다시 증명할 수 있는 팀’이다
박정아를 이야기할 때 ‘클러치 박’이라는 별명은 그냥 붙은 수식어가 아니다. 큰 경기, 긴 랠리, 승부처에서 공격을 마무리하는 장면이 많았다. 2022-2023시즌 도로공사의 우승 서사에서도 박정아의 존재감은 컸다. 흥국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도로공사는 시리즈 흐름을 뒤집었고, 그 중심에 베테랑 공격수들의 버티는 힘이 있었다.
하지만 2025-2026시즌 FA 시장에서 박정아를 보는 시선은 예전과 달랐다. 33세 시즌, 공격 성공률과 득점 생산성이 전성기 대비 내려갔다는 평가가 따라붙었다. 공격수에게 나이는 숫자이기도 하지만, 리시브 부담과 점프 회복력까지 같이 보면 꽤 현실적인 숫자다.
그래서 도로공사 복귀는 박정아에게 익숙한 코트로 돌아가는 동시에, 역할을 다시 조정할 수 있는 선택으로 보인다. 무조건 1옵션으로 모든 공을 때리는 방식보다, 승부처 공격과 경험, 라커룸 리더십을 함께 쓰는 편이 더 설득력 있다. 박정아가 가장 빛났던 장면도 단순한 다득점보다 흐름을 끊지 않는 한 방에 가까웠다.
도로공사도 박정아가 필요했다
한국도로공사는 전통적으로 조직력, 수비, 세터와 미들블로커 활용이 강점인 팀이다. 그런데 우승 이후 전력 변화가 이어지면서 날개 공격의 무게감은 계속 고민거리였다. 외국인 선수에게만 공격을 몰아주면 정규리그 긴 호흡에서 한계가 온다. 국내 아웃사이드 히터가 버텨줘야 사이드아웃이 안정된다.
박정아의 장점은 명확하다.
- 큰 경기 경험이 많다.
- 높은 타점에서 처리하는 능력이 있다.
- 흐름이 흔들릴 때 어려운 공을 맡을 수 있다.
- 도로공사 시스템과 김천 홈 분위기를 이미 안다.
물론 약점도 그대로 있다. 리시브 안정성은 커리어 내내 따라다닌 과제였고, 나이가 들수록 수비 범위와 공격 효율을 동시에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그래서 이번 복귀의 관전 포인트는 ‘박정아가 예전처럼 많이 때리느냐’가 아니다. 도로공사가 박정아의 공격 가치를 살리면서 리시브 부담을 얼마나 나눠 갖느냐가 더 중요하다.
2017년의 선택과 2026년의 복귀는 닮았지만 다르다
박정아는 2017년에도 큰 결정을 했다. IBK기업은행을 떠나 도로공사를 선택했을 때, 그는 더 성장하고 싶다는 메시지를 남겼다. 당시에는 20대 중반 공격수의 도전이었다. 리시브를 더 받고, 레프트로 자리 잡고, 자신의 가치를 높이겠다는 방향성이 있었다.
2026년 복귀는 성격이 다르다. 이번에는 성장보다 재배치에 가깝다. 페퍼에서의 대형 계약은 박정아 개인에게도, 팀에게도 기대치가 너무 컸다. 성적과 팀 상황이 기대만큼 따라오지 못하자 FA 시장에서 선택지는 좁아졌다. 그 상황에서 도로공사는 박정아가 자신의 장점을 가장 빨리 되살릴 수 있는 팀이었다.
팬 입장에서는 이 복귀가 꽤 흥미롭다. 박정아가 다시 도로공사 유니폼을 입는다는 장면 자체도 강하지만, 더 재미있는 건 기록의 방향이다. 득점 총량이 줄어도 공격 성공률, 클러치 상황 득점, 리시브 효율 손실을 얼마나 관리하느냐에 따라 평가는 달라질 수 있다. 예전의 박정아를 그대로 기대하면 실망할 수도 있다. 대신 지금의 박정아가 어떤 방식으로 팀에 맞춰지는지를 보면 훨씬 볼 게 많다.
이 복귀가 말해주는 것
박정아의 한국도로공사 복귀 이유는 하나로만 묶기 어렵다. 페퍼저축은행의 불안정한 상황, A등급 FA 보상 규정, 사인 앤드 트레이드라는 거래 방식, 도로공사의 국내 공격수 필요, 선수 본인의 재도약 욕구가 겹쳤다. 감정적으로는 친정 복귀지만, 구조적으로는 꽤 치밀한 선택이었다.
개인적으로는 이 이동을 ‘과거로 돌아간 선택’으로 보지 않는다. 오히려 선수 커리어 후반부에 맞는 새 역할을 찾는 과정에 가깝다. 박정아가 예전처럼 매 경기 20점씩 몰아치는 그림보다, 중요한 세트 후반에 한두 번 흐름을 바꾸는 장면을 얼마나 자주 만들 수 있느냐. 그 숫자가 이번 복귀의 진짜 평가표가 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