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찬 기록을 따라가봤더니, 숫자가 말해준 LG 뒷문 이야기

얼마 전 LG 경기를 보다가 9회가 되자 분위기가 확 바뀌는 걸 느꼈습니다. 점수 차가 크지 않은데도 더그아웃과 관중석의 표정이 묘하게 단단해지더군요. 그 중심에 유영찬이 있었습니다. 마무리 투수는 단순히 마지막 아웃카운트 3개를 잡는 선수가 아닙니다. 앞의 8이닝이 쌓아 올린 흐름을 잃지 않게 붙잡는 사람이고, 그래서 기록표의 숫자 하나하나가 꽤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습니다.
11세이브보다 먼저 보이는 0.75
KBO 기록실 기준 유영찬의 2026시즌 성적은 13경기, 12이닝, 11세이브, 평균자책점 0.75입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짧고 강렬합니다. 특히 마무리 투수에게 평균자책점 0점대는 단순한 호투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등판 상황 자체가 대부분 압박이 크기 때문입니다. 7점 차에서 편하게 던지는 1이닝과 1점 차 9회는 전혀 다른 야구입니다.
더 눈에 들어오는 건 피안타 4개와 피홈런 0개입니다. 12이닝 동안 맞은 안타가 4개뿐이라는 건 타자들이 제대로 타이밍을 맞추지 못했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피안타율 0.103, WHIP 0.83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주자를 많이 내보내지 않았고, 장타 한 방으로 경기가 뒤집히는 위험도 억제했습니다.
- 2026시즌: 13경기 12이닝
- 세이브: 11개
- 평균자책점: 0.75
- WHIP: 0.83
- 피안타율: 0.103
- 피홈런: 0개
2024년 26세이브가 만든 기준선
유영찬을 볼 때 2024년을 빼놓으면 이야기가 반쪽이 됩니다. 2024시즌 그는 62경기에서 63과 3분의 2이닝을 던졌고, 7승 5패 26세이브, 평균자책점 2.97을 기록했습니다. 사실상 풀타임 마무리로 자리 잡은 시즌이었죠. 2023년에는 67경기 68이닝, 12홀드와 1세이브를 기록하며 불펜 핵심 자원으로 쓰였고, 2024년에 역할이 뒤쪽으로 이동했습니다.
재미있는 건 탈삼진 흐름입니다. 2023년 55탈삼진에서 2024년 77탈삼진으로 올라갔습니다. 이닝은 오히려 줄었는데 삼진은 늘었습니다. 위기 상황에서 수비 도움을 기다리는 유형이 아니라, 직접 타자를 눌러버릴 수 있는 방향으로 진화했다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마무리 투수에게 이건 꽤 큰 차이입니다. 인플레이 타구가 많으면 변수가 생기지만, 삼진은 가장 깔끔한 출구니까요.
좋은 기록에도 남는 불안 요소
그런데 숫자가 전부 편안하지만은 않습니다. 2026시즌 유영찬은 12이닝 동안 볼넷 6개를 기록했습니다. WHIP가 낮은 이유는 피안타가 극단적으로 적었기 때문이지, 볼넷이 완전히 사라진 투구는 아니었습니다. 9이닝당 볼넷으로 환산하면 4.5개 수준입니다. 이 정도면 컨디션이 조금만 흔들려도 9회가 길어질 수 있습니다.
물론 마무리 투수는 볼넷 하나를 내줘도 다음 타자를 힘으로 누르며 끝낼 수 있어야 합니다. 유영찬은 실제로 2026시즌 블론세이브 0개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숫자는 강합니다. 하지만 장기 레이스에서는 볼넷 관리가 결국 체력과 직결됩니다. 투구 수가 늘고, 연투 부담이 생기고, 포수의 리드 폭도 좁아집니다. 그래서 유영찬의 다음 단계는 단순히 구위 유지가 아니라 카운트 싸움의 효율성에 있다고 봅니다.
LG 불펜 안에서 유영찬의 무게
LG는 최근 몇 년간 불펜 활용 폭이 넓은 팀이었습니다. 2026시즌 팀 기록에서도 세이브와 홀드 부문이 리그 상위권으로 잡힐 만큼, 경기 후반 운영 자체가 팀의 경쟁력입니다. 이런 팀에서 마무리는 더 특별합니다. 앞에서 여러 투수가 6회, 7회, 8회를 나눠 막아도 결국 마지막 이름이 흔들리면 전체 설계가 무너집니다.
유영찬이 가진 장점은 역할 적응 속도입니다. 2023년에는 필승조와 중간 연결고리 성격이 강했고, 2024년에는 세이브 26개로 뒷문을 맡았습니다. 2025년에도 21세이브를 올리며 단발성 활약이 아니라는 걸 보여줬습니다. 그리고 2026년 초반 11세이브, 평균자책점 0.75는 다시 한 번 그 흐름을 이어간 장면입니다. 표본은 길지 않지만, 경력의 방향성은 분명합니다.
기록표 밖에서 보이는 포인트
마무리 투수의 기록은 늘 잔인합니다. 잘 막으면 당연한 것처럼 지나가고, 한 번 무너지면 경기 전체의 기억을 가져갑니다. 유영찬의 2026년 숫자가 인상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13경기에서 실점 1점, 자책점 1점만 허용했다는 건 경기의 끝에서 흔들림을 최소화했다는 뜻입니다.
다만 저는 유영찬을 볼 때 세이브 개수보다 등판 후 경기 흐름이 얼마나 빨리 닫히는지를 더 봅니다. 1이닝을 10구 안팎으로 끝내는 날이 많아질수록 LG는 다음 경기 불펜 운용까지 여유를 얻습니다. 반대로 볼넷으로 시작하는 9회가 반복되면 세이브를 올려도 피로는 쌓입니다. 그래서 앞으로의 관전 포인트는 세이브왕 경쟁만이 아닙니다. 피안타 억제력이 유지되는지, 볼넷 비율이 내려가는지, 연투 상황에서도 구속과 커맨드가 같이 버티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유영찬은 이미 LG 팬들에게 익숙한 이름이지만, 기록을 따라가면 그냥 익숙한 투수가 아니라 역할을 바꿔가며 자기 위치를 넓혀온 투수에 가깝습니다. 2023년의 많은 등판, 2024년의 26세이브, 2026년 초반의 0점대 평균자책점은 따로 떨어진 장면이 아닙니다. 지금의 유영찬은 그 시간들이 쌓여 만들어진 마무리이고, 그래서 9회에 그의 이름이 뜰 때 경기의 온도가 달라지는 건 꽤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