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로공사 김종민을 기록으로 다시 봤더니, 0%에서 최다승까지 이어진 이야기

얼마 전 V리그 지난 시즌 기록을 다시 훑다가 도로공사 김종민이라는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단순히 우승 감독이라서가 아니다. 이 이름에는 꼴찌, 통합우승, 역스윕, 여자부 감독 최다승, 그리고 챔프전 직전 결별이라는 꽤 복잡한 장면들이 한꺼번에 붙어 있다.
스포츠를 기록으로 보다 보면 가끔 숫자가 사람보다 더 솔직할 때가 있다. 김종민 감독의 도로공사 시절도 그렇다. 감정적으로는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기록표만 놓고 보면 그는 구단의 체질을 바꾼 감독이었다. 동시에 마지막 장면은 배구 팬들이 오래 이야기할 만한 논쟁거리로 남았다.
꼴찌에서 첫 통합우승까지
김종민 감독은 2016년 한국도로공사 지휘봉을 잡았다.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2016~2017시즌 도로공사는 여자부 6위에 그쳤다. 사실 첫 시즌 꼴찌라는 결과는 감독 커리어에 꽤 큰 흠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런데 다음 시즌 숫자가 완전히 뒤집혔다.
2017~2018시즌 도로공사는 정규리그 21승 9패, 승점 62로 1위에 올랐고 챔피언결정전에서도 IBK기업은행을 상대로 3연승을 거뒀다. 구단 창단 첫 통합우승이었다. 여기서 중요한 건 단순한 우승이 아니라 상승 폭이다. 한 시즌 전 최하위였던 팀이 바로 다음 시즌 정규리그와 챔프전을 모두 잡았다. 이건 선수 보강만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박정아 영입, 외국인 선수 이바나 효과, 베테랑 이효희와 정대영, 배유나, 임명옥의 중심축이 맞물렸다. 그래도 코트 위에서 이 조합을 굴러가게 만든 건 감독의 선택이었다. 도로공사는 김종민 체제에서 서브 리시브와 수비를 버티고, 긴 랠리에서 상대를 지치게 만드는 팀 색깔을 만들었다.
도로공사 배구의 색깔은 왜 끈끈했나
김종민식 도로공사를 이야기할 때 자주 나오는 표현이 끈끈함이다. 조금 뻔하게 들릴 수 있는데, 경기 기록을 보면 그냥 감성어가 아니다. 도로공사는 압도적인 화력으로 밀어붙이는 팀이라기보다 리시브 라인, 디그, 블로킹 위치 선정으로 버티는 시간이 긴 팀이었다. 그래서 경기 흐름이 흔들려도 세트 후반에 다시 붙는 장면이 많았다.
이 팀의 상징적인 선수는 리베로 임명옥, 미들블로커 배유나, 수비형 아웃사이드 히터 문정원 같은 이름들이다. 스타 공격수 하나가 전부 해결하는 구조보다 코트 뒤쪽에서 공이 살아나는 구조에 가까웠다. 공격 성공률이 조금 내려가도 수비와 연결이 버텨주면 세트는 길어진다. 김종민 감독이 도로공사에서 오래 버틴 이유도 이 지점에 있다. 팀이 매 시즌 완벽해서가 아니라, 무너질 때도 완전히 흩어지지 않는 방식이 있었다.
- 2016~2017시즌 여자부 6위
- 2017~2018시즌 정규리그 1위와 챔피언결정전 우승
- 2018~2019시즌 챔피언결정전 준우승
- 2022~2023시즌 V리그 최초 챔프전 리버스 스윕 우승
- 2025년 12월 여자부 감독 통산 최다승 기록
2023년의 0%, 그 장면이 아직도 강한 이유
도로공사 김종민을 말할 때 2022~2023시즌 챔피언결정전은 빼기 어렵다. 당시 도로공사는 정규리그 3위로 봄배구에 들어갔다. 챔프전 상대는 김연경이 버티던 흥국생명. 게다가 1·2차전을 먼저 내줬다. 5전 3승제에서 첫 두 경기를 잃은 팀이 우승한 전례가 없었으니, 팬들이 말한 0%라는 표현도 괜히 나온 말은 아니었다.
그런데 도로공사는 3·4·5차전을 모두 잡았다. 특히 5차전은 세트 스코어 3-2, 마지막 세트 15-13이었다. 숫자로만 보면 두 점 차 승부지만, 그 안에는 체력, 멘털, 세터 선택, 공격 분산, 수비 집중력이 다 들어 있었다. 챔프전은 전술표대로만 흘러가지 않는다. 한두 번의 범실, 한 번의 비디오 판독, 리시브 하나가 시리즈 전체를 바꾼다. 김종민 감독은 그 혼란 속에서 팀을 끝까지 버티게 했다.
개인적으로 이 우승이 더 인상적인 건 도로공사가 완성형 전력으로만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노장 비중이 높다는 평가도 있었고, 상대에 비해 화제성도 덜했다. 그런데 실제 경기에서는 경험 많은 선수들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실수를 줄였다. 이건 감독이 시즌 내내 어떤 기준으로 선수들을 준비시켰는지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최다승 기록과 2026년의 낯선 장면
2025년 12월 14일 IBK기업은행전도 김종민 감독 커리어에서 큰 날짜다. 도로공사는 1·2세트를 먼저 내주고도 3-2로 뒤집었다. 모마가 35득점, 타나차가 18득점, 김세빈이 11득점을 올린 경기였다. 그리고 김 감독은 이 승리로 여자부 감독 통산 158승째를 기록하며 최다승 1위에 올랐다. 한국배구연맹 기록에서 이정철 전 감독의 157승을 넘어선 순간이었다.
재밌는 건 이 기록도 도로공사다운 방식으로 나왔다는 점이다. 압승이 아니라 역전승이었다. 두 세트를 먼저 잃고 따라붙어 5세트에서 끝내는 흐름. 김종민 감독의 대표 장면들이 자꾸 이런 형태로 남는 건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도로공사의 강점은 경기 초반부터 상대를 압도하는 쪽보다, 흔들린 뒤에도 다시 균형을 잡는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2026년 봄의 장면은 밝은 기록만으로 덮을 수 없다. 도로공사는 2025~2026시즌 정규리그 1위로 챔피언결정전에 직행했지만, 구단은 김종민 감독과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코치 폭행 및 명예훼손 관련 약식기소가 배경으로 거론됐고, 챔프전을 앞둔 팀은 김영래 감독대행 체제로 넘어갔다. 혐의와 법적 판단은 신중하게 봐야 하지만, 챔프전 직전 사령탑 교체가 팀 흐름에 충격을 준 건 부인하기 어렵다.
이후 도로공사는 GS칼텍스에 챔피언결정전 3연패를 당했고, GS칼텍스는 준플레이오프를 거친 팀으로는 여자부 최초로 챔프전 우승을 차지했다. 도로공사 입장에선 정규리그 1위의 체력 이점과 홈 이점을 제대로 살리지 못한 시리즈였다. 그래서 김종민 감독의 마지막은 더 복잡하다. 업적은 분명 큰데, 팀과의 이별 방식은 너무 거칠었다.
숫자 뒤에 남은 감정
도로공사 김종민이라는 키워드는 이제 단순히 한 감독 이름이 아니다. 도로공사가 여자부 강팀으로 자리 잡는 과정, 베테랑 중심 팀이 어떻게 긴 시즌을 버티는지, 그리고 단기전에서 감독의 존재감이 얼마나 큰지 보여주는 사례에 가깝다.
그의 도로공사 시절을 무조건 낭만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논란도 있었고, 끝도 매끄럽지 않았다. 다만 2016년 이후 도로공사의 굵직한 순간을 꺼내면 결국 김종민이라는 이름을 지나가게 된다. 꼴찌에서 통합우승으로, 0%에서 리버스 스윕으로, 158승이라는 최다승 기록으로 이어진 흐름은 V리그 여자부 역사에서도 꽤 선명하다. 그래서 김종민의 도로공사는 기록보다 조금 더 오래 사람들 입에 남을 팀처럼 느껴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