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서현 한화 9회 벤치, 다시 돌려봤더니 더 잔혹했던 이유

얼마 전 한화 경기를 다시 돌려보다가 9회 장면에서 리모컨을 멈췄습니다. 점수판만 보면 삼성의 6-5 역전승인데, 공 하나하나를 따라가면 훨씬 복잡합니다. 김서현 한 명의 난조로만 접어두기에는, 벤치의 판단과 불펜 운용, 그리고 젊은 투수가 감당한 압박이 한꺼번에 겹쳐 있었습니다.
5-0 리드가 5-6으로 바뀐 밤
2026년 4월 14일 대전 삼성전은 한화 팬에게 꽤 오래 남을 경기였습니다. 한화는 6회까지 5-0으로 앞섰고, 선발 문동주는 5이닝 6피안타 5사사구 6탈삼진 무실점으로 버텼습니다. 완벽한 투구는 아니었지만 위기 때 힘으로 밀어붙이는 장면이 있었고, 타선도 필요한 점수를 뽑았습니다.
그런데 7회부터 흐름이 이상해졌습니다. 삼성은 안타로만 쫓아온 게 아니었습니다. 한화 마운드가 계속 베이스를 열어줬고, 삼성은 그 틈을 끈질기게 파고들었습니다. 당일 한화 투수진이 내준 사사구는 18개였습니다. KBO 한 경기 팀 최다 사사구 기록이 새로 쓰인 날이었죠. 야구에서 18개의 공짜 출루는 사실상 수비 시간이 아니라 버티기 훈련에 가깝습니다.
김서현의 1이닝 7사사구, 숫자가 말한 균열
김서현의 기록은 1이닝 1피안타 7사사구 3실점으로 남았습니다. 표면상 3실점이지만 체감은 그보다 컸습니다. 8회 2사 만루에서 올라와 밀어내기와 폭투로 점수를 내줬고, 9회에도 다시 마운드에 섰습니다. 선두타자 안타, 희생번트, 볼넷, 몸에 맞는 공. 이후 홈 승부로 한 점을 막아냈지만, 최형우에게 밀어내기 볼넷을 내주며 5-5가 됐고, 이어 다시 볼넷으로 역전을 허용했습니다.
구속은 여전히 매력적입니다. 김서현의 빠른 공은 리그에서도 눈에 띄는 자산입니다. 문제는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존을 통과하지 못할 때입니다. 150km대 공이라도 타자가 방망이를 낼 이유가 없으면 위협은 줄어듭니다. 특히 9회는 타자가 더 침착해지는 구간입니다. 상대는 ‘맞혀서 해결’보다 ‘기다려서 출루’를 선택할 수 있고, 투수는 스트라이크 하나를 잡기 위해 더 큰 부담을 안습니다.
벤치는 왜 더 빨리 움직이지 않았나
팬들이 답답해한 지점은 여기입니다. 김서현이 흔들린 건 경기의 일부일 수 있습니다. 젊은 투수는 흔들릴 수 있고, 강속구 투수에게 제구 난조는 성장 과정에서 반복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벤치가 그 흔들림을 어디까지 감수할지 결정하는 건 전혀 다른 문제입니다.
8회에 이미 사인이 나왔습니다. 사사구가 쌓였고, 폭투까지 나왔습니다. 9회 첫 타자 출루 뒤에도 위험 신호는 더 커졌습니다. 그런데 교체는 역전이 나온 뒤였습니다. 결과를 알고 하는 말처럼 들릴 수 있지만, 당시 흐름은 이미 숫자로 경고하고 있었습니다. 스트라이크를 잡는 과정이 매끄럽지 않았고, 삼성 타자들은 무리해서 치지 않았습니다. 이럴 때 벤치의 역할은 믿음을 보여주는 데서 끝나지 않습니다. 믿음에 제한 시간을 두는 것도 운영입니다.
믿음과 방치는 한 끗 차이
클로저에게 9회를 맡기는 건 단순한 보직 배치가 아닙니다. 팀이 가장 센 압박을 특정 선수에게 맡긴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더 섬세해야 합니다. 투수가 자기 공을 던지고 맞는 것과, 공이 빠지고 손에서 놓이는 상태로 계속 끌려가는 것은 다릅니다. 후자는 경기뿐 아니라 다음 등판의 기억까지 건드립니다.
- 한화는 5점 리드를 지키지 못했다.
- 팀 전체 사사구 18개로 리그 기록에 남는 난조를 보였다.
- 김서현은 8회와 9회를 이어 던지며 7사사구를 허용했다.
- 교체 타이밍은 동점 이후도 아니고 역전 허용 뒤에야 나왔다.
김서현에게 필요한 건 더 큰 짐이 아니었다
김서현은 2025년에 33세이브를 올리며 한화 불펜의 상징 같은 존재가 됐습니다. 그러니 벤치가 다시 세워주고 싶은 마음도 이해는 됩니다. 강속구, 젊음, 스타성, 9회 경험까지 갖춘 투수는 흔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 이력이 2026년 4월의 불안까지 자동으로 지워주지는 않습니다.
사실 이런 장면에서 제일 잔혹한 건 실패 자체가 아닙니다. 실패가 길어지는 동안 아무도 끊어주지 않는 느낌입니다. 투수는 마운드 위에서 혼자 공을 던지지만, 그 상황을 설계하고 멈추는 권한은 벤치에 있습니다. 김서현이 다시 살아나려면 ‘무조건 9회’라는 상징보다, 스트라이크를 회복할 수 있는 낮은 압박의 등판이 먼저였을지도 모릅니다.
한화가 강팀으로 가려면 김서현을 포기해서도 안 되고, 김서현에게 모든 걸 떠넘겨서도 안 됩니다. 9회는 선수의 배짱만 시험하는 시간이 아닙니다. 벤치의 판단 속도, 불펜 뎁스, 시즌 전체를 보는 시야가 같이 드러나는 시간입니다. 그날의 9회가 유독 아프게 남는 이유도 그래서입니다. 김서현의 공은 여전히 빠르지만, 그 공이 다시 무기가 되려면 먼저 팀이 그를 어떤 상황에 세울지부터 달라져야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