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 김범수 기록을 다시 봤더니, 좌완 붕괴는 한 장면이 아니었다

얼마 전 KIA 경기 기록지를 보다가 7회 이후 김범수 이름 옆에 찍힌 숫자에서 손이 멈췄습니다. 왼손 투수 한 명의 부진으로만 보기엔, 팀의 후반 운영 전체가 흔들린 흔적이 너무 선명했거든요. 김범수는 원래 이런 역할로 데려온 투수가 아니었습니다. 좌타자 앞에서 흐름을 끊고, 6~7회 한 박자를 건너가게 해주는 좌완 셋업 카드. 그런데 올해는 그 장점이 가장 필요한 순간에 희미해졌습니다.
20억 좌완에게 걸었던 기대
김범수는 2025년 한화에서 73경기 48이닝, ERA 2.25, WHIP 1.08, 피안타율 0.181을 찍었습니다. 볼넷 이슈가 있던 커리어를 떠올리면 꽤 큰 변화였고, 포스트시즌에서도 무실점 흐름을 이어갔습니다. 그래서 KIA의 3년 총액 20억원 투자는 단순한 좌완 수집이 아니라 약점 보강이었습니다. 우완 필승조 사이에 좌완 승부처 카드를 꽂겠다는 계산이었죠.
그런데 2026년 기록은 완전히 다른 얼굴입니다. 9월 21일 KBO 기록 기준 58경기 38이닝, 1승 3패 1세이브 13홀드, ERA 5.92. 표면 성적도 아쉽지만 더 아픈 건 WHIP 2.08과 피안타율 0.323입니다. 38이닝 동안 안타 50개, 볼넷 29개를 내줬다는 뜻입니다. 불펜 투수에게 WHIP 2점대는 매 이닝 주자를 둘 이상 깔고 싸우는 구조에 가깝습니다.
무너진 건 구위보다 카운트 싸움이었다
김범수의 공이 아예 사라졌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 삼진은 34개로 아주 없는 수치가 아니고, 직구와 슬라이더의 힘 자체는 여전히 상대가 부담스러워하는 구간이 있습니다. 문제는 그 공을 꺼내는 순서와 카운트 운영이 너무 빡빡해졌다는 쪽에 더 가깝습니다.
상황별 기록을 보면 초구부터 맞는 장면이 꽤 많았습니다. 0-0에서 피안타율 0.467, 2-1에서 0.583입니다. 불리한 카운트로 몰리면 볼넷도 커졌습니다. 3-1에서 볼넷 8개, 3-2에서 볼넷 12개. 좋은 공을 갖고도 타자에게 기다릴 이유를 줬다는 뜻입니다. 사실 좌완 불펜은 긴 이닝을 던지는 선발과 다릅니다. 공 4~6개 안에 승부의 방향이 정해지는 일이 많고, 그 짧은 틈에서 초구와 두 번째 공이 맞아나가면 벤치가 믿고 맡기기 어렵습니다.
좌타자 상대로도 프리미엄이 줄었다
더 뼈아픈 대목은 좌완이 좌타자를 확실히 잠그지 못했다는 점입니다. 김범수는 올해 좌타자에게 피안타율 0.317을 허용했습니다. 우타자 상대 0.333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물론 좌타자 상대로 홈런은 맞지 않았고 탈삼진 24개를 뽑아낸 건 긍정적입니다. 하지만 좌타자에게 안타 33개, 볼넷 14개를 내줬다면 좌완 매치업이라는 단어의 설득력이 약해집니다.
특히 KIA가 그에게 기대한 건 단순 등판 수가 아니었습니다. 6회 1사 1,2루에서 왼손 중심타선을 만나거나, 7회 하위 타선 앞에 연결고리를 끊는 장면. 그런 순간을 줄이려고 데려온 투수입니다. 그런데 올해 7회 이후 피안타율이 0.319, 볼넷 23개로 불어났습니다. 중심타선 상대 피안타율도 0.361입니다. 이것은 평균자책점 하나보다 벤치 신뢰를 더 직접적으로 흔드는 숫자입니다.
개인 부진이 팀의 좌완난으로 번진 이유
김범수의 부진이 더 크게 보인 건 KIA 좌완진의 사정 때문입니다. 7월 말 김범수가 2군으로 내려갔을 때 1군에 남은 좌완은 최지민과 이의리 정도였습니다. 곽도규는 내전근 부상으로 빠졌고, 윤영철은 재활 흐름에 있었으며, 이준영도 정상적인 1군 전력으로 계산하기 어려웠습니다. 김기훈까지 변수에 묶이면서 KIA는 말 그대로 왼손 카드가 얇아졌습니다.
- 2025년 김범수: 73경기, ERA 2.25, WHIP 1.08, 피안타율 0.181
- 2026년 김범수: 58경기, ERA 5.92, WHIP 2.08, 피안타율 0.323
- 최근 10경기: 3과 3분의 2이닝, ERA 12.27, 피안타율 0.500
- 좌타자 상대: 피안타율 0.317, 볼넷 14개, 탈삼진 24개
이 숫자들을 나란히 놓으면 원인이 하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제구 난조, 카운트 불리함, 투피치 패턴 노출, 좌완 뎁스 붕괴, FA 계약 이후 역할 부담이 한꺼번에 겹쳤습니다. 그래서 2군 재조정 뒤 8월 중순 돌아왔음에도 완전히 편안한 그림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8월 20일 한화전처럼 아웃카운트 없이 2피안타 1홈런 2실점을 남긴 경기는, 감독 입장에선 다음 승부처 기용을 망설이게 만드는 장면입니다.
다시 살아나려면 바꿔야 할 지점
감독 코멘트에서 눈에 띄었던 표현은 투구 세팅이었습니다. 상대가 어떤 공을 던질지 알고 들어온다는 진단은 단순한 정신론이 아닙니다. 좌완 불펜이 직구와 슬라이더 위주로 버티려면 스트라이크존을 넓게 쓰고, 같은 슬라이더라도 카운트 잡는 공과 헛스윙을 유도하는 공이 달라야 합니다. 그런데 스트라이크를 넣는 데 급해지면 타자는 기다립니다. 기다리다 몰리면 치고, 안 들어오면 걸어 나갑니다. 올해 김범수의 WHIP가 말해주는 장면이 딱 그겁니다.
그래도 완전히 끝난 카드로 보는 건 섣부릅니다. 좌완 불펜은 리그 전체에서 늘 귀하고, 김범수는 이미 2022년 27홀드, 2023년 18홀드, 2025년 ERA 2.25를 만든 이력이 있습니다. 다만 예전처럼 좌타자니까 김범수라는 자동 공식은 깨졌습니다. 이제는 구위 회복보다 먼저 승부 방식의 회복이 필요합니다. 초구 선택, 볼카운트별 목적, 좌타자 몸쪽 활용, 완급 조절이 돌아와야 KIA도 다시 6~7회를 계산할 수 있습니다. 숫자는 차갑지만 가끔 친절합니다. 올해 김범수 기록은 그가 못 던졌다는 낙인보다, 어떤 방식으로 다시 던져야 하는지를 꽤 또렷하게 가리키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