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디 폰세의 2025년 기록표를 다시 봤더니, 숫자가 경기처럼 뛰었다

얼마 전 2025년 KBO 투수 기록표를 다시 넘기다가 코디 폰세 이름에서 손이 멈췄다. 17승 1패, 평균자책점 1.89, 탈삼진 252개. 이 정도면 단순히 잘 던진 시즌이 아니라, 리그의 박자를 한 투수가 통째로 바꾼 시즌에 가깝다.
숫자가 먼저 말한 압도감
KBO 공식 기록 기준으로 폰세는 2025년 한화 이글스에서 29경기, 180⅔이닝을 던졌다. 여기서 17승, 승률 0.944, 평균자책점 1.89, WHIP 0.94를 찍었다. 다승, 평균자책점, 탈삼진, 승률 1위. 외국인 투수 최초의 투수 4관왕이라는 수식어가 과장이 아니었다.
- 29경기 180⅔이닝
- 17승 1패, 승률 0.944
- 평균자책점 1.89, WHIP 0.94
- 탈삼진 252개, 볼넷 41개
- K/BB 6.15, 9이닝당 탈삼진 약 12.6개
특히 252탈삼진은 따로 떼어 봐야 한다. 2021년 아리엘 미란다가 세운 225탈삼진을 27개나 넘어선 기록이다. 단순 누적도 대단하지만, 180⅔이닝에서 이 숫자를 만들었다는 점이 더 강하다. 선발투수가 긴 이닝을 먹으면서도 삼진 페이스를 끝까지 유지했다는 뜻이니까.
5월 17일, 대전에서 생긴 괴상한 경기
폰세 시즌을 한 장면으로 압축하면 역시 2025년 5월 17일 SSG전이다. 대전 더블헤더 1차전에서 8이닝 2피안타 1볼넷 무실점, 그리고 18탈삼진. 투구 수는 113개였다. 한화가 1대0으로 이겼으니, 이 경기는 기록 쇼케이스이면서 동시에 한 점 차 살얼음판이었다.
18탈삼진은 선동열의 KBO 한 경기 최다 탈삼진 기록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숫자다. 다만 선동열의 18개는 13이닝 경기였고, 폰세는 8이닝 안에서 만들었다. 9이닝 기준으로 보면 류현진이 2010년에 세운 17탈삼진을 넘어선 장면이었다. 이게 팬들에게 더 크게 박힌 이유가 있다. 그냥 삼진을 많이 잡은 게 아니라, 경기의 거의 모든 위기를 수비 이전에 본인이 지워버렸기 때문이다.
삼진과 볼넷의 간격
삼진형 투수는 종종 볼넷이라는 세금을 낸다. 그런데 폰세는 252탈삼진을 잡는 동안 볼넷을 41개만 줬다. K/BB 6.15는 힘으로 찍어누르는 투수가 제구까지 갖췄을 때 얼마나 무서워지는지 보여준다. 타자는 빠른 공을 의식해야 하고, 떨어지는 공에는 배트가 따라 나간다. 그런데 카운트 싸움에서도 쉽게 무료 출루를 주지 않으니 공격 쪽에서는 숨을 돌릴 구간이 별로 없었다.
일본 시절을 떠올리면 더 드라마틱하다
폰세의 2025년이 더 흥미로운 건 이전 커리어와의 낙차 때문이다. 그는 2015년 밀워키 브루어스 2라운드 지명자였고, 2020~2021년 피츠버그에서 빅리그를 경험했다. 당시 MLB 통산 성적은 55⅓이닝, 1승 7패, 평균자책점 5.86. 이후 일본으로 건너갔지만 2024년 라쿠텐 1군 성적도 67이닝 평균자책점 6.72로 매끈하지 않았다.
그런 선수가 한국에서 갑자기 리그를 찢었다. 이유를 단순히 리그 차이로만 밀어붙이면 재미가 반쯤 사라진다. 폰세는 구속을 끌어올렸고, 포심과 스플리터 조합의 위력을 키웠다. 큰 키에서 나오는 익스텐션 덕분에 타자 입장에서는 공이 실제 속도보다 더 빨리 다가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KBO는 컨택 능력이 좋은 타자가 많은 리그라서, 헛스윙을 꾸준히 뽑아내는 선발은 그 자체로 경기 운영의 질을 바꾼다.
한화에 남긴 건 트로피보다 진한 기억
폰세는 2025년 KBO MVP 투표에서 125표 중 96표를 받았다. 류현진 이후 19년 만에 나온 한화 출신 MVP라는 점도 상징적이었다. 최동원상까지 받았으니, 시즌 전체의 평가도 숫자와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당시 한화에는 류현진이라는 거대한 이름이 있었고, 라이언 와이스도 200탈삼진을 넘겼다. 그 안에서 폰세는 에이스 경쟁을 넘어 리그 전체의 기준선이 됐다.
개막 이후 선발 17연승도 빼놓기 어렵다. 승리는 투수 혼자 만드는 숫자가 아니지만, 선발이 매번 팀에 이길 수 있는 형태의 경기를 제공했다는 뜻은 분명하다. 평균자책점 1점대 투수가 180이닝을 넘기고, 삼진 신기록까지 세우면 팬들의 기억에는 경기 결과보다 먼저 투구의 분위기가 남는다.
토론토행 이후에도 계속 읽히는 이름
폰세는 2025시즌 뒤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3년 3000만 달러 계약을 맺고 MLB로 돌아갔다. KBO에서 재가공된 투수가 다시 빅리그 시장에서 평가받은 사례다. 2026년 토론토 데뷔전에서는 2⅓이닝 1실점 3탈삼진을 기록했지만, 수비 과정에서 오른쪽 무릎 전방십자인대 부상을 당해 60일 부상자 명단으로 이동했다. 숫자의 흐름만 보면 아쉽지만, 토론토가 본 건 한 시즌 반짝이 아니라 구속, 제구, 헛스윙 능력의 조합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코디 폰세의 2025년은 한화 팬에게만 특별한 계절이 아니었다. KBO가 어떤 투수를 다시 빚어낼 수 있는지, 그리고 기록표의 숫자가 한 선수의 커리어를 어떻게 다시 움직일 수 있는지 보여준 시즌이었다. 개인적으로는 252탈삼진보다 41볼넷이 더 오래 남는다. 압도적인 투수는 힘으로 기억되지만, 진짜 무서운 투수는 힘을 낭비하지 않는 쪽에 더 가깝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