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도영·오스틴·힐리어드·곽빈 2026 MVP 후보를 보니

정규시즌 기록표를 다시 펼쳐 봤는데, 올해는 한 숫자만으로 MVP를 고르기가 참 어렵다. 김도영은 45홈런으로 장타 경쟁을 이겼고, 오스틴은 출루와 장타를 합친 생산력에서 앞섰다. 힐리어드는 139타점으로 KT의 우승 시즌을 이끌었고, 곽빈은 마운드에서 평균자책점과 탈삼진을 모두 가져갔다. 같은 야구를 했는데도 네 선수가 남긴 이야기는 꽤 다르다.
네 명이 눈에 띄지만 후보는 14명이다
KBO가 10월 13일 발표한 정규시즌 MVP 후보는 투수 7명, 야수 7명이다. 김도영·오스틴·힐리어드·곽빈이 모두 이름을 올렸지만 이들만의 4파전으로 확정된 것은 아니다. 타율 0.371의 구자욱, 단일 시즌 211안타를 친 레이예스, 공동 다승왕 임찬규와 고영표도 투표 대상이다. 특히 레이예스의 안타 신기록은 누적 기록의 가치를 따질 때 빼놓기 어렵다.
기자단 투표는 정규시즌이 끝난 뒤 시작됐고 수상자는 11월 KBO 시상식에서 공개된다. 그래서 지금 보는 포스트시즌 장면을 정규시즌 성적과 섞어 평가하면 이야기가 흐려진다. KBO 최종 기록을 기준으로, 누가 어떤 방식으로 경기를 지배했는지를 보는 편이 이 경쟁을 더 재미있게 만든다.
김도영의 45홈런과 오스틴의 OPS 1.062
김도영의 기록에서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45홈런이다. 힐리어드를 단 1개 차로 제친 홈런왕이고, 장타율도 0.647로 리그 1위다. 135경기에서 타율 0.308, 118타점, 120득점을 올렸다. 홈런만 많이 친 시즌이 아니라 득점까지 꾸준히 쌓은 시즌이다. 2024년 MVP였던 선수가 다시 홈런왕으로 돌아왔다는 흐름도 투표하는 사람의 기억에 남을 만하다.
다만 2024년의 김도영을 그대로 떠올리면 올해 모습이 잘 안 보인다. 당시에는 38홈런에 40도루를 더했지만, 올해의 무게중심은 주루보다 장타에 있다. MVP 근거도 과거의 화려한 조합이 아니라 2026년의 45홈런과 리그 최고 장타율에서 찾아야 한다.
오스틴은 다른 쪽에서 강하다. 144경기를 모두 뛰며 180안타, 41홈런, 127타점을 남겼고 타율은 0.331이다. 출루율 0.427과 장타율 0.635를 합친 OPS는 1.062로 김도영의 1.060보다 근소하게 높다. 홈런 4개 차이만 보면 김도영이 앞서지만, 타석에서 얼마나 자주 살아 나가고 얼마나 강한 타구를 만들었는지 함께 보면 오스틴의 주장이 선명해진다.
그런데 0.002의 OPS 차이를 압도적인 격차처럼 말하기는 어렵다. 오스틴은 타격 생산력과 전 경기 출장이라는 강점이 있고, 김도영은 홈런왕과 장타율 1위라는 뚜렷한 타이틀이 있다. 무엇을 더 높게 평가하느냐에 따라 두 타자의 순서는 바뀐다.
힐리어드의 타점에는 시즌 후반의 흐름이 담겼다
힐리어드는 142경기에서 44홈런, 139타점을 기록했다. 홈런왕과는 1개 차이였고 타점은 리그 1위다. 9~10월만 떼어 보면 32경기에서 14홈런과 40타점. KBO 발표에 따르면 이 기간 두 부문 모두 1위였고, 7월에 이어 월간 MVP도 다시 받았다. 외국인 선수가 한 시즌에 월간 MVP를 두 차례 받은 첫 사례다.
이 숫자가 눈에 걸리는 이유는 시점 때문이다. KT가 정규시즌 우승으로 달려가던 막판에 힐리어드의 장타가 몰렸다. 물론 타점은 앞선 타자들의 출루 기회에 영향을 받는다. 139라는 숫자만으로 타격 능력을 단정할 수는 없다. 그래도 우승 경쟁이 한창일 때 14홈런을 몰아친 사실까지 더하면, 그가 팀 공격에서 맡은 역할은 분명하다.
힐리어드의 OPS는 0.967로 오스틴과 김도영보다 낮다. 개인의 타석당 생산력을 중시하면 밀릴 수 있지만, 타점왕·홈런 2위·우승팀 중심 타자라는 세 가지 근거가 한 시즌에 겹쳤다. 시즌 초반의 부진을 뒤집고 후반기에 가장 뜨거운 타자 중 하나가 됐다는 점도 올해 힐리어드만의 이야기다.
곽빈의 2.24는 승수보다 더 많은 것을 말한다
타자 세 명과 곽빈을 같은 줄에 세우면 비교가 어려워진다. 그래서 곽빈은 먼저 투수들 사이에서 봐야 한다. 27경기, 161이닝, 11승 7패, 197탈삼진, 평균자책점 2.24. 평균자책점 2위가 3.13이었으니 격차가 0.89나 된다. 탈삼진도 2위보다 11개 많다. 승수는 공동 1위의 15승에 못 미쳤지만, 타자를 얼마나 묶었는지 보여 주는 지표는 압도적이다.
승리는 선발투수 혼자 만들 수 없다. 같은 6이닝 1실점을 해도 타선이 점수를 내지 못하면 승리가 사라진다. 그런 점에서 곽빈의 11승만 붙잡고 평가를 낮추기는 아쉽다. 반면 161이닝은 시즌 내내 훌륭한 투구를 하면서도 등판량까지 크게 쌓은 유형의 기록은 아니다. 그의 표를 고민한다면 경기당 지배력과 누적 기여를 함께 따져야 한다.
내 표를 고른다면 곽빈의 평균자책점 격차를 오래 들여다볼 것 같다. 그래도 김도영의 홈런왕, 오스틴의 꾸준한 생산력, 힐리어드의 우승 경쟁 속 폭발력 중 어느 하나를 가볍게 넘기기는 어렵다. 올해 MVP 경쟁이 재미있는 건 네 선수가 서로 다른 기록으로 같은 질문을 던지기 때문이다. 한 시즌을 가장 크게 바꾼 플레이가 무엇이었는지, 기록표를 볼 때마다 답이 조금씩 달라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