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흥민·박지성·김민재 아시아 베스트 11을 짜봤더니

예전 아시아 축구 명장면을 다시 보다 보니 묘한 생각이 들었다. 손흥민의 침투 앞에 박지성이 공을 되찾아 주고, 그 뒤를 김민재가 지킨다면 어떤 팀이 될까. 서로 다른 시대의 선수를 한 경기장에 세우는 상상이지만, 기록을 따라가면 세 사람을 함께 넣을 이유가 분명해진다.
이름값보다 역할을 먼저 맞췄다
내 아시아 베스트 11은 전성기 기준 4-3-3이다. 공식 선정 명단은 아니다. 소속팀의 위상이나 우승 횟수만 더하지 않고, 각 선수가 어떤 방식으로 팀에 기여했는지와 서로 맞물리는 역할을 봤다. 같은 나라 선수가 여럿 들어간 것도 국적별 자리를 정해두지 않은 결과다.
- 골키퍼: 알리 알합시(오만)
- 수비수: 우치다 아쓰토(일본), 김민재(한국), 홍명보(한국), 이영표(한국)
- 미드필더: 기성용(한국), 박지성(한국), 나카타 히데토시(일본)
- 공격수: 차범근(한국), 알리 다에이(이란), 손흥민(한국)
알합시는 잉글랜드에서 오랜 기간 뛴 골키퍼다. 홍명보는 수비 라인의 방향을 잡고, 김민재는 넓은 공간을 책임진다. 우치다와 이영표는 양쪽에서 오르내릴 수 있다. 중원에는 기성용의 배급, 박지성의 활동량, 나카타의 전진 패스를 놓았다. 앞의 세 명은 득점 방식이 달라 함께 세워볼 만하다.
손흥민의 23골은 팀의 공격 방식도 보여준다
손흥민을 왼쪽 공격수로 놓는 데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2021~22시즌 기록은 다시 볼 만하다. 프리미어리그에 따르면 손흥민은 23골로 무함마드 살라흐와 공동 득점왕에 올랐다. 아시아 선수로는 처음 받은 골든부트였다. 마지막 노리치전에서 두 골을 넣어 동률을 만든 장면까지 선명하다.
숫자만 보면 마무리 능력이 먼저 보인다. 그런데 손흥민의 강점은 상대 수비가 올라오는 순간부터 시작된다. 공을 받으러 발밑으로만 다가가는 대신 수비수 뒤쪽으로 뛰고, 그 움직임이 다른 공격수의 공간까지 연다. 측면에서 출발해 중앙으로 들어와 슈팅하거나, 직접 동료에게 찬스를 내줄 수도 있다. 프리미어리그가 집계한 토트넘 시절 리그 기록은 127골 71도움이다. 득점만 많은 선수가 아니라 공격의 여러 경로에 관여한 선수라는 뜻이다.
이 팀에서는 차범근과 손흥민이 서로 다른 쪽에서 속도를 낸다. 중앙의 알리 다에이는 박스 안에서 공을 기다릴 수 있다. 손흥민에게 수비가 쏠릴수록 반대편과 중앙에 기회가 생기는 그림이다.
박지성의 19골을 19골로만 읽으면 놓친다
박지성의 프리미어리그 통산 득점은 19골이다. 손흥민의 수치와 나란히 두면 차이가 크다. 하지만 두 선수를 같은 득점 기준으로 재단하면 박지성이 맡았던 일을 지워버리게 된다. 프리미어리그 자료에는 박지성의 리그 우승이 네 차례로 기록돼 있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그는 공을 가진 동료의 선택지를 늘리고, 공을 잃은 직후에는 상대의 첫 패스를 방해했다.
그래서 이 명단에서는 박지성을 중앙 미드필더로 둔다. 손흥민이 전진해 비운 왼쪽 공간을 살피고, 기성용에게 압박이 붙으면 가까이 와서 패스 길을 만든다. 상대가 측면으로 공을 돌릴 때는 풀백과 함께 압박한다. 활동량이라는 말 하나로 끝내기엔 판단해야 할 순간이 많은 자리다. 2002년 월드컵 포르투갈전의 골은 FIFA가 꼽은 한국 축구의 명장면이지만, 박지성의 가치는 득점 장면 사이의 움직임에서도 드러났다.
김민재가 있어야 앞선의 모험이 가능하다
공격적인 선수를 많이 넣은 팀에는 늘 같은 문제가 따른다. 공을 빼앗겼을 때 뒤에 누가 남는가. 김민재를 고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바이에른 뮌헨 선수 소개에 따르면 그는 나폴리가 2022~23시즌 세리에A 우승을 차지할 때 뛰었고, 그 시즌 리그 최우수 수비수에도 선정됐다. 우승팀의 뒷문을 지킨 성과와 개인 평가가 함께 남아 있다.
김민재는 상대 공격수가 돌아서기 전에 앞으로 나가 경합하고, 뒤로 뛸 상황에서는 긴 보폭으로 공간을 메운다. 다만 이런 수비가 언제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동료가 뒷공간을 함께 관리하지 않으면 전진 수비는 위험해진다. 이 조합에서 홍명보의 위치 선정과 기성용의 수비 지원이 중요한 이유다. 홍명보는 2002년 월드컵에서 한국의 4강을 이끈 주장으로, FIFA 브론즈볼도 받았다. 두 중앙 수비수의 강점은 서로 경쟁하기보다 역할을 나눌 때 살아난다.
남은 자리에도 각자의 기록이 있다. 분데스리가 자료에는 차범근의 리그 98골과 두 차례 UEFA컵 우승이 남아 있고, FIFA는 알리 다에이의 이란 대표팀 109골을 기록한다. 시대와 대회가 달라 어느 숫자가 더 크다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다만 한쪽에는 유럽 무대에서 오래 증명한 공격수, 다른 쪽에는 대표팀에서 꾸준히 골을 넣은 공격수가 있다는 점이 이 명단을 흥미롭게 만든다.
실제로 뛰었다면 공을 오래 쥐는 경기보다 빼앗은 뒤 빠르게 전진하는 경기에서 더 무서웠을 것 같다. 박지성이 흐름을 바꾸고, 김민재가 뒤의 공간을 버티며, 손흥민이 마지막 빈틈으로 달려가는 장면이 그려진다. 베스트 11을 고르는 재미는 이름 열하나를 적는 순간보다, 그 이름들이 함께 뛸 때의 장면을 상상하는 데 있다.
